▲ 이재명 논설위원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오면 눈맞을 세라 비가 오면 비젖을 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 세라 사랑 땜에 울먹일 세라~

이맘 때면 빨간 홍시가 꽃처럼 피어난다. 가지가 앙상하게 드러날 때마다 하늘은 차가워지고 홍시의 색깔은 더 붉어진다. 먹을 것이 늘 부족했던 시절, 홍시는 좋은 간식이었다. 필자는 어렸을 때 아침마다 홍시를 줍는 것이 일이었다. 홍시를 주워다가는 아무도 몰래 부엌 살강 위에 올려놓고 밥그릇을 덮어놓곤 했다. 어무이가 밥그릇을 뒤집으면 먹음직한 홍시가 나타나도록 살강 한 복판에 올려놓았다.

반중(盤中:소반 가운데) 조홍(早紅)감(일찍 빨갛게 익은 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귤의 일종) 아니라도 품은 즉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 박인로(1561~1642)의 시 ‘조홍가(早紅歌)’. 가까이 지내는 한음 이덕형으로부터 조홍감을 선물 받았으나 반길 부모가 돌아가시고 없음을 서러워하는 내용이다.

이 시조의 내용은 육적회귤(陸績懷橘)이라는 고사와 관련돼 있다. 삼국시대 오나라 왕 손권의 참모를 지낸 육적은 6살 때 어느 대갓집에 심부름을 갔다가 음식상에 놓인 귤을 품 속에 숨겼다가 들키고 말았다. 주인이 연유를 묻자 육적은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에 주인은 육적의 효심에 탄복해 귤을 한아름 싸주었다.

육적이 귤(유자)을 품어 갔듯이 박인로도 불현듯 홍시를 품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만추의 풍수지탄이 더욱 깊다.

예부터 감나무는 문(文)·무(武)·충(忠)·절(節)·효(孝)의 5덕(德)을 갖춘 나무라고 했다. 단풍들면 커다란 잎에 먹이 잘 묻어서 文, 목질이 단단해 화살촉으로 쓰여서 武, 열매의 겉과 속이 동색이어서 忠, 서리가 내릴 때까지도 열매가 달려 있어서 節, 치아가 없는 노인도 홍시를 먹을 수 있어서 孝가 있다고 했다. 5덕이 다 훌륭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효가 더 가슴 속으로 파고 드는 것은 왜일까. 젊을 때 다하지 못했던 효가 찬바람에 쓸쓸하다.

홍시여, 이 사실을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것을. -나쓰메 소세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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