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옥 무거중 교사

“여학생 교실이 왜 이렇게 더럽니?”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이 말에서 불편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변했다. “교실이 깨끗하면 좋겠지만, 여학생 교실이라서는 아니잖아요?”라고 생각할 것이고, 그렇게 말도 할 것이다. “남자가 뭐 그 만한 일로 울고 그러냐?”라는 말은 어떤가? 남학생들은 곧장 그 말의 주인을 꼰대 교사로 여길 것이며, 그 교사는 ‘패싱’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일명 ‘Generation Snowflake(눈송이 세대)’라는 말로 비난받기도 하는 우리 아이들은 차별에 민감하고, 불합리와 불공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

2018년 마블이 제작한 ‘블랙 팬서’를 보고 영화관을 나서며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신선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1980~1990년대 내가 보던 영화 속에서 백인 외의 사람은 나쁜 사람이었고, 조연이었다. 또 여자 주인공은 오로지 사랑만이 모든 선택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은 백인이 아니다. 흥행을 목표로 한 블록버스터 영화였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특수부대 대장 역의 여자 배우는 지위와 정치적 신념에 따라 행동하며, 사랑했던 남자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맞선다. ‘지금까지 이런 영화는 없었다’랄까?

2016년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82년생이면서 김지영인 여러 명의 여성이 겪었을 ‘울기엔 애매한’ 부조리 한 일화를 한 번에 겪는 주인공을 보며, ‘가위눌림’을 떠올렸었다. ‘이 꿈에서 깰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그런데 2018년을 지나 2019년. “I won’t go speechless(나는 말도 못한 채 있진 않을 거야)!”라고 외치며, 술탄이 되겠다는 자스민 공주가 주인공인 ‘알라딘’이 나왔고, 포털 집계 1255만 명의 관람객이 보았다. 또 영화 ‘82년 김지영’도 다양한 논란을 일으키며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다. 알람이 울리면 잠에서 깨어날 수 있다.

학교는 항상 가장 느리게 변해왔다. 세상은 검증되지 않은 여러 생각들이 넘쳐나고, 파도처럼 유행이 몰아쳤다가 사라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학교가 표류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이제 젠더 문제는 하나의 큰 물결이 되었다. 대중의 관심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는 영화들이 이 문제를 비켜가고 있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여학생이니까 학생회 부회장을 하고, 남학생이니까 학생회 회장을 하던 시대, 남학생이라서 무거운 걸 들고, 여학생이라서 들지 않던 시대는 끝났다. 학교에서 ‘여자라서’ ‘남자라서’라는 말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성별에 따른 차이가 아니라 개개인의 특성 차이임을 생각한다. 여학생이 운동을 좋아하는 것, 남학생이 운동을 안 좋아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말 그대로 ‘개취(개인의 취향)’다. 이별에 관한 시를 가르치며, ‘남자들은 이 마음을 잘 몰라’라고 말했다가 남학생들에게 큰 원성을 들었다. 그렇게 ‘남자들은’이라고 일반화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너무 꼰대 같았다’고 정중히 사과했다.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여자라서 못하는 일, 여자라서 해야 하는 일’ ‘남자라서 억지로 하는 일, 남자라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없어지길 희망한다. 그들이 세상에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말도 못한 채 있진 않을 것이니 말이다. 강대옥 무거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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