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낭만정서 사라져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도 퇴화
감성 잃은 꼰대는 되지 않아야

▲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독일 만하임대학 초빙 연구원

최백호가 부른 ‘낭만에 대하여’라는 가요가 노래방에서 중년 사내들의 애창곡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색소폰 소리도 궂은 비 내리는 날 다방에서 들어야 제맛이 나고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연락선 선창가에서 더욱 애틋해 진다고 믿는 세대들의 이야기다. 이런 감상에 젖어드는 사람들에게 흔히 낭만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약간은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불필요한 감성에 많이 의존한다는 의미이다.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는 호칭도 이와 비슷한 의미다.

낭만이라는 단어는 프랑스어로 소설을 의미하는 로망(Roman)을 번역한 말로서 감성의 과잉으로 초래되는 약간은 퇴폐적이거나 병적인 정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낭만적인 사람’이라는 호칭이 이성보다는 감성을 앞세우는 비합리적인 사람을 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실제 낭만주의가 발생한 유럽에서는 이것 보다 훨씬 깊은 역사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낭만이라는 의미가 단순히 한 개인의 태도나 정서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 철학, 역사, 예술과 같은 정신활동 뿐만 아니라 건축양식에도 영향을 끼친 시대적인 가치관 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미술관에 가서 낭만파 미술가들의 작품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괴테와 니체의 작품을 읽는다. FM 라디오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슈베르트와 브람스, 바그너와 베르디 같은 낭만주의 음악가들의 작품을 방송하고 우리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즐기고 있다. 낭만주의라는 정신적 조류가 한 시대의 세계사적인 상황 속에서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개인과 자아 인식의 발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정신적 사조이기 때문이다.

이성과 합리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며 형식적 가치와 분업의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고전주의적인 인간관에서는 개인적인 감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이성만능의 가치관 아래 질식되어 가는 인간의 감성을 자아의 중심으로 재평가한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이 바로 낭만주의 사조의 창시자들이다. 200년 전에 이미 그들은 합리성과 분업의 효율성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가 초래하는 휴머니즘과 인간 존엄성의 몰락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모든 가치의 중심이 된 인권이라는 개념도 이 때 생겨난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숭고함을 주장하는 낭만주의적 사조가 일어난 200년 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환경이 향상된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기술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했고, 생활수준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아졌다. 그럼에도 200년 전 낭만주의자들이 걱정하던 문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이웃도시의 산부인과에서 일어난 끔찍스런 장면을 우리는 TV화면에서 보았다. 간호사가 막 태어난 신생아를 아무런 감정 없이 물건 던지듯이 바구니에 던지는 장면이다. 이 아이는 엄마의 배속에서 나오자마자 세상의 냉혹함을 말 그대로 뼈저리게 겪어야만 했다. 두개골이 골절되었다고 한다. 이 간호사에게는 새로운 생명을 다루는 일조차도 자기가 맡아서 처리해야할 하나의 일에 불과했던 것이다. 일도 아주 하찮은 일이었던 것이다. 감성이 사라진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 가를 보여주는 끔찍한 장면이었다. 타인에 대한 일말의 공감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할 수 없는 일을 너무도 태연하게 저지르는 새로운 인간형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낭만적인 정서가 사라지는 시기는 모든 사람에게 찾아온다. 흔히 노년이 되면 감성의 강도가 저하된다고 한다. 감각적인 수용능력도 줄어든다.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 보다는 그저 평온한 것이 좋다. 이러다 보니 삶의 반경이 점점 좁아지게 된다. 그 대신 끈질기게 살아남아 강도를 더해가는 것은 원초적 욕구, 즉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욕망, 그리고 자기의 습관과 견해나 판단에 대한 강한 집착이다. 남의 말을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낭만적인 감성은 그저 가벼운 정서의 낭비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판단력에서 감성과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제외하면 남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거나 죄를 변명하기에 급급하는 가혹한 이성일 뿐이라는 것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나이 들어가는 것은 별로 두렵지 않으나 감성을 잃어버린 꼰대로 변해 가는 것은 참으로 겁나는 일이다. 끊임없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독일 만하임대학 초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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