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의 운용-관리시스템
사용자 경험 최우선 시대 역행
혁신·창조의 장애물…개혁 절실

▲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 교수

“UX/UI라는 단어, 들어본 적 있으시죠?” 사용자경험/사용자환경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사실 디자인-공학에서 연구개발 프로세스에 넣는 오랜 필수지표였다. 그 전문적 쓰임새가 사회­문화 트렌드로 확산되어, 이제 관련 분야가 아니더라도 흔히 사용하는 의미가 되었다.

UX Design­User Experience Design­사용자경험 디자인은 최종 사용자의 경험­편의에 중심을 두는 설계다. 즉 제품이나 서비스 사용자의 편의성이 최우선 기준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예전엔 사용자보다 생산자, 관리자가 더 우선이었다. 복잡한 TV리모컨과 전자제품 버튼들, 이해하기 어려운 사용설명서, 현위치와 방향이 뒤집혀 혼란스런 각종 안내도, 고객이 서 있는 은행이나 공공기관의 대면창구, 이리저리 꼬인 실내 동선 등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사용자 중심인 지금은 사용설명서 없이 직관적인 터페이스를 갖춘 리모컨과 제품이 쓰이고, 공원이나 기관의 안내도도 비교적 현위치와 방향이 일치한다. 은행이나 공공기관의 대면창구도 고객이 앉도록 되어 있다. 시설물 이동동선도 개선되고, 실외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도 많다.

사용자 경험­편의를 최우선하는 개선은 물리적 대상을 넘어 서비스시스템으로 확장됐다. 구매할 때마다 복잡한 인증, 결제 과정을 요구했던 온라인 결제시스템은 이제 원클릭도 귀찮을 만큼 편리해졌고, 관리기관마다 따로 신청했던 민원청구는 통합민원사이트로 일원화됐다. 사용자중심 서비스시스템 디자인은 하루가 다르게 개선되고 있다. 정부기관·관공서·경찰서 이용은 이제 과잉친절이 부담스러울 지경이라고 한다. 웬만한 민원은 원스톱처리가 기본이고, 출국 당일 공항에서 긴급여권도 만들어주고 국제운전면허증도 발급해준다.

그러나 아직 제자리 걸음 아니, 뒷걸음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공공기관의 운용­관리시스템이다. 사용자 경험 관점에서 보면, 필자를 비롯한 공공기관 구성원이 감내해야 하는 불편함의 수준은 21세기는 ‘개뿔’, 1989년 수준이다. 수많은 항목으로 규정된 기관 운영비, 연구비 집행은 어떻게 맞춰 쓰려해도 늘 어렵다. 유연성이 1도 없는 규칙들은 시간이 갈수록 까다로워진다. 연구비 정산과 행정업무는 전자정부가 무색하게 아직도 종이로 프린팅해 증빙 삼는다. 영수증을 붙여 제출하고 한글자 실수하면 모조리 반려감인 탓에 행정원도, 교원도, 그 어떤 구성원도 스트레스다.

세상 모바일 시대인데 스마트폰에서 문서결재도 잘 안된다. 변수가 많고 초를 다투건 말건, 어떤 활동이든 무조건 사전승인 사안이다. 출발일이 가까울수록 가격이 오르는 항공권도 사전승인 후 구입하라는 규정이 신설되어 아까운 연구비와 나랏돈을 더 쓰게 만든다. 마치 같은 구성원끼리 더 복잡하고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규정 만들기 놀이, 지키기 놀이, 벌주기 놀이를 하는 것 같다.

왜 사용자 중심으로 뛰어가는 세상과 반대로, 뒷걸음질하는 운용­관리시스템이 존재하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가 사용자로 또 관리자로 경험하며 찾은 원인은 ‘나만 피해 없으면 OK!’ 때문이다. ‘내 부서만 책임 안 질 수 있다면, 증빙하나 규정하나 더 만들어도 아무 상관없기’ 때문이다. 사용자와 관리자에게 더 비효율적인 업무가 되어 시간과 비용, 자원을 더 낭비하더라도, 내 조직만 무사하면 괜찮다는 ‘책임회피 의식’ 때문이다. 받고 넘기면 그만이니, 대통령 귀국하신 날에 국가원수 순방기간 동안 복무기강 철저확립하라는 공문이 시스템에 뜨는 웃픈 장면이 생긴다. 종이컵 사용을 줄여 자원절약, 친환경 하자면서 그 놈의 증빙은 꼭 종이로 남겨야만 하기에, 컴퓨터 파일로 작성하고 저장하고도 또 출력한다. 그래서 오늘도 복합기 토너와 A4용지와 딱풀과 스테플러는 절찬리에 소모 중이다.

이게 지금 뭐하는 것인가 생각이 들어야 정상이 아닐까? 기업과 민관기관에서 그토록 타파하고자 노력하는 개인주의, 부서이기주의가 공공기관에서는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사용자인가 관리자인가가 중요치 않다. 모든 구성원은 사용자인 동시에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은 정말이지 민간부문이 아니라 정부와 공공기관부터 절실한 ‘사용자경험 디자인’이다. 이 세상 혁신과 창조가 필요하다면.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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