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리 울산시설공단 가족문화센터 소장

지난 2014년 2월 서울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아니,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다. 사건은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던 세 모녀가 생활고로 고생하다 방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놓고 동반자살한 사건이다. 지하 셋방에서 살던 세 모녀는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은 물론 수입도 없는 상태였으나 국가와 자치단체가 구축한 어떤 사회보장체계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70만원,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해 우리들에게 아픔을 줬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빈곤과 복지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큰 충격을 주었다. 사건 이후 ‘송파 세 모녀 법’으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제정됐고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정치권과 정부, 지자체가 앞 다투어 방안들을 내놓았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지 5년이 지났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과연 사회빈곤층이 얼마나 해소됐으며 송파 세 모녀와 유사한 생활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또 다른 가정들은 어떤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고 있는 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일 서울 성북구 한 다세대 주택에서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집 안에서는 A4용지 한 장짜리 유서가 발견됐고 경찰은 이 일가족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외도 지난 7월에는 한모(42세)씨와 아들 (6세) 모자가 임대아파트에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발견 당시 냉장고에는 음식물이 거의 없었고 예금통장에도 잔고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극도의 생활고로 굶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자유와 행복을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굶어죽었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잊어질만하면 터지고 조용해진다 싶으면 또 생기는 일가족 집단 사망사건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인가? 이들 사건들의 공통점은 ‘생활고’다.

이 사건들을 다시 들추는 것은 언제 또다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보건복지부는 현장 중심의 위기가구 선제적 발굴과 탄력적 지원을 목적으로 ‘겨울철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대책’을 적극 이행하기로 했다. 정부는 성북구 네 모녀 사건 등을 계기로 금융취약계층에 대한 두터운 보호를 위해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와 지방자치단체간 금융-복지지원 연계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취약계층과 사회 빈곤층을 위한 각종 법령과 제도가 마련된 바도 있지만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그 실효성이 있었는지는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고립된 가정은 해법을 스스로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결과로 나타나기 쉽다. 전문가들은 정신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 사회적인 네트워크의 문제, 대인관계 문제 이런 것들을 하나의 솔루션으로 종합적으로 도와줘야지 결국 사회로 나오고, 자살예방을 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은 경제적 위기 등으로 고립돼 자살 위험성이 높은 가족을 미리 찾아내 경제적 문제 뿐 아니라 대인관계까지 지원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바로 사회 빈곤층이나 고립된 이들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관심’이다.

날씨가 곧 영하로 떨어진다. 소외된 이들이 맞는 체감 온도는 영하의 날씨 보다 더 차갑게 가슴을 파고 들 것이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1577-0199), 희망의 전화(129), 생명의 전화(1588-9191)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으니 알려주는 일도 하자. ‘오지랖 넓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그들의 차가운 가슴에 관심과 따뜻한 온정의 입김을 불어넣는 ‘착한 오지랖’은 넓어도 괜찮다고 본다. 이미리 울산시설공단 가족문화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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