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 공동체성향 강한 울산사회
드라마 속 해방구 ‘까멜리아’처럼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소통공간 필요

▲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많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종영했다. 주인공에게 무한 사랑을 보내는 어린 순정남 같이 상투적인 설정도 있지만, 가진 것 없는 동백이 선한 의지로 자기 삶을 바꾸어나가는 과정은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미혼모인 동백을 향한 편견과 배척, 곤경에 처한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보통사람들의 의리, 평범한 얼굴의 살인마가 불러일으키는 공포, 깊은 상처와 위로를 주고받는 다양한 가족의 이야기가 눈물과 웃음 속에 버무려졌다.

드라마의 무대는 바닷가 게장골목이 있는 옹산이다. 혈연과 학연으로 얽혀 있는 이 끈끈한 공동체로 들어온 동백은 허름한 창고를 빌려 까멜리아라는 술집을 연다. 익명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작은 동네에서, 외지에서 ‘굴러들어온’ 동백만이 사람들과 공유하는 기억이 없고 편견 또한 없다. 그래서 주민들은 동백을 경계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편안해한다. 구설과 평판, 살피고 간섭하는 시선에 얽매여있는 작은 공동체에서 동백의 까멜리아는 해방구가 된다. 동네 남자들이 이 술집을 찾는 이유이다. 그곳에서는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울산에서 까멜리아 같은 곳은 어디일까? 그전에, 울산에도 까멜리아 같은 장소가 필요할까?

대답부터 하자면 울산이야말로 까멜리아 같은 시민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도 다양하게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물론 울산은 드라마 속 옹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도시이다.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될 당시와 비교해도 인구가 열 배 이상 늘어났고 면적도 엄청나게 넓어졌다. 전체 인구 가운데 토착민 비율은 10% 선으로 줄어들었다. 공동체의 폐쇄성을 우려하기보다는 주민들의 정주의식 부족이 걱정거리가 된지 오래이다.

그렇지만 한 꺼풀만 들춰보면 울산은 직장이 있는 곳일 뿐 삶과 무관한 곳으로 여기는 사람들,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이웃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 은퇴 후에는 떠나가려는 사람들, 경제와 일자리 외에 도시에 대해서는 별 기대가 없는 사람들, 낮은 문화수준에 실망하는 사람들의 도시이다. 도시 문화의 수준과 색깔을 결정하는 지역정치에는 무관심하고 시민적 책임감과 주인의식도 취약하다.

울산을 고향으로 둔 ‘본토’의 관점에서 보면 울산은 드라마 속 옹산과 크게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지연이나 학연에 기반을 둔 이른바 ‘계중’ 네트워크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한 다리만 건너면 절친한 친구이거나 그 형, 누나, 동생이고 학교 선후배이며, 친인척의 지인이다. 이런 환경에서 다양성의 정치, 혁신의 정치를 상상하고 모색하기는 쉽지 않다. 울산을 고향으로 두지 않은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울산의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울산은 다양한 주민들로 이루어진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어울리는 정치적 포용성, 문화적 다양성을 보살피고 키우는데 소홀했다. 토착민이든 이주민이든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형식적 다양성은 많지만 실질적으로는 폐쇄적인 공동체에 긴박되어 있거나, 서로 교류할 기회를 갖지 않는 모래알 같은 시민들의 도시이다. 이런 곳에서 세련되고 매력적인 문화가 태어나고 성숙하기는 어렵다. 관광용 케이블카 논란이나 환경 파괴 이슈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울산시민이 예찬하고 사랑하는 자연환경의 보전도 장차 지역정치나 시민철학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울산은 동백꽃과 인연이 많다. 남쪽 바다에는 동백꽃이 지천으로 피는 천연기념물 춘도가 있고 시청 정원에는 울산에 기원이 있다는 오색팔중산춘(五色八重散椿)이 일본에서 돌아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들 동백꽃처럼 시민사회에도 자유롭고 책임 있는 시민들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다양하고 포용적인 까멜리아들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해본다.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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