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개의 가면쓰고 사는 복잡한 삶
‘과하면 탈 난다’는 이치 깨달아야
어린아이 같은 단순함이 필요한 때

▲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개인을 지칭하는 영어 단어 ‘person’은 배우의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날마다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가정에서는 부모, 자녀, 형제, 사위와 며느리의 가면으로, 학교에서는 교직원과 학생, 직장에서는 맡은 직책으로, 일상에서는 또 다른 나만의 가면으로 시시때때 변장을 한다. 그래서 매일 바쁘고 복잡하게 사나 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도 주인공 김지영은 아내, 엄마, 동료, 며느리, 딸, 누나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오래전에 성철 큰스님이 살아계실 때 백련암에서 들었던 이야기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큰스님에게 인생의 지혜를 얻고자 찾아왔다. 그중 어떤 이도 어린 아들을 데리고 왔던가 보다. 아무리 졸라도 덕담은커녕 어린 아들과 놀기만 하시더라는 것이다. 곁에서 지켜보았던 보좌 스님 왈,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살아라’라는 가르침이라고 해석했다. 어린이 같은 마음이란 무엇일까. 순수, 순진, 겸손, 간단, 단순…. 이런 이미지가 아닐까. 예수께서도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로 다투는 제자들을 향해, 어린이를 옆에 앉히시고 “너희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라고 하셨다.(루카 9.46-50) 어린이는 이해관계나 타산을 따지지 않는다. 여러 개의 가면도 쓰지 않는다. 복잡하지 않다. 몰라서 높은 위치를 바라지도 않는다.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점점 복잡해진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하면 될 것을 자존심 때문에, 주변 눈치를 보느라 망설인다. 단순한 문제도 더 복잡하게 꼬이게 한다.

전쟁의 원칙에도 ‘간명성’이라는 요소가 있다. 작전명령도 복잡하면 안 된다. 단순해야 한다. 그래서 군인들은 평상시에도 작전명령 5개 항(상황, 임무, 실시, 전투근무지원, 지휘 및 통신)을 간단명료하게 하달하는 훈련을 한다. 전투할 때 군인은 당장 싸울 최소한의 총기와 군장만 있으면 된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저서 <행복 예습>에서 ‘전방부대를 방문하여 강연할 때면 군단장실이나 사단장실에 들르곤 했다. 그들은 꼭 필요한 몇 가지 물건만 사무실에 놓고 있었다. 신속한 행동을 위해 불필요한 물건들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그런 것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꼭 필요한 물건들만 지니고 힘차게 사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오늘도 여러 개의 가면을 바꿔가며 복잡하게 살아가는 현대인. 이젠 단순했던 그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어떡하나. 다양한 페르소나의 갈등을 생활의 간명함과 사고(思考)의 단순함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에 대한 관심이 지금도 뜨겁다.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여 조금이라도 덜 복잡하게 살아가려는 현대인의 몸부림이리라. 돌아보면 잦은 이사에 불필요한 것 하나씩 버리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인생도 지극히 단순한지 모른다. 생-노-병-사. 이 간단한 원리를 툭하면 잊고 산다. 그 실체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대부분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 넘쳐나는 널브러진 명함과 직함들. 또 다른 가면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릴 게 아니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가면부터 우선 벗어버리자. 과분(過分)하면 항상 탈이 난다.

거상(巨商) 임상옥이 항상 곁에 두고 ‘넘침’을 경계했다는 ‘계영배’가 생각난다. 단순한 생활의 출발은 정리정돈이다. 내 인생 폴더함의 휴지통부터 비워야겠다. 페르소나 인생, 끊임없는 자아 성찰이 필요하다. 아! 어린이 같이 가벼운 단순함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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