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두 시인·소설가

저명한 시조시인이었던 노산 이은상은 경남도민의 노래 가사를 쓰면서 낙동강을 도민들의 혈관 속에 흐르는 피라고 표현했다. 낙동강이 경남도민의 피라고 한다면 태화강은 울산시민들에게 무엇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태화강은 울산시민들의 피가 되긴 했어도 낙동강과는 견줄 수 없는 차원으로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사실이 그렇다. 태화강은 겨레의 빈곤을 물리친 기적의 강이었다. 태화강이 기적을 일으킴으로써 한강의 기적을 가져오고 세계만방에 번영된 국가임을 떨치게 되었다. 썩 내키지 않는 일이라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한국을 부자의 나라로 인증하고 있으니 억지로라도 자축할 처지가 되었다. 아무튼 태화강이 울산시민에게 주는 자긍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절대적인 것이다.

그런데 주야로 글쓰기에 골몰하는 필자에게 요즘 태화강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일이 생겼다. 사연은 최근들어 자주 듣게 되는 태화강의 나이 탓이다. 태화강이 ‘강으로 흐름을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으며 지금까지 몇 년에 걸쳐 이어지고 있느냐?’하는 것을 7천년으로 보는 이가 있었다. 평소 신뢰감을 갖고 그 방면에 박식함을 보이고 있는 터여서 물어보게 되었다. 그는 반구대 암각화를 근거로 청동기 시대가 7천년 전이 되기에 태화강이 그때도 흘렀을 것이란 주장이었다. 그렇기도 하겠단 생각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단정은 어쩐지 속산일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태화강이 2천년도 아닌 7천년의 역사를 지닌다면 향토사가 뿌리 채 흔들리게 되지 않는가?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태화강의 역사만은 두 가지 설이 아닌 단일화로 시민들이 인식을 같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제 2호 국가정원이 된 마당에 앞으로 수없이 찾아올 타 지역 사람들에게 이 강이 갖는 역사를 한결같이 바르고 옳게 알려야 할 것이란 생각에서다.

1978년 울산·울주 향토사를 퍼낼 때 필자가 집필에 참여하고 전체적인 문장을 바로잡는 작업을 하면서 태화강과 관계가 깊은 태화사의 기록을 통해 태화강의 역사를 미루어 짐작해본 적이 있다. 지금의 태화루 자리에 있던 태화사는 신라 10대 사찰중의 하나였다.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당나라 태화지(太和池)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석가여래의 진신사리 1백 여구와 붉은색 가피를 받게 되었다. 그 때 태화지의 용이 자장에게 청하기를 ‘경주 황룡사의 용과 나는 형제간이니 한국으로 가서는 곧 불사를 이루어 주시오.’ 자장이 귀국하자마자 태화사와 통도사를 창건하고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통도사 계단과 경주 황룡사 9층 석탑에 각각 나누어 봉안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체류한 태화지는 그 경치가 아름다우면서 태화강의 경치와 닮았다고 한다. 그런 점이 부처님의 점지로 안 자장율사는 그 자리에 태화사를 창건하고 동시에 통도사를 창건하면서 절벽 아래의 내(川)를 태화강(太和江)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태화강은 지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온 때 통도사를 창건함과 같이 하게 된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태화강의 역사는 이 설에 따라 1천년이 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또 덧붙여 말한다. 이 경우 천년이란 뜻은 단순히 천년이란 햇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더 먼 곳을 가리키는 뜻을 담고 있어 천년을 넘더라도 부르기 좋게 천년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태화강의 나이도 실제 천년은 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내려온 정설이 바뀌지 못한다는 법도 없다. 그러나 울산으로서는 적어도 태화강을 두고는 결코 혼선을 빚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7천년으로 하는 근거가 보편적 타당성이 있다면 그렇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의 설을 따라야 할 것이다. 시나 시의회가 나서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보면 어떨까한다.

도시의 도심을 강이 흐른다는 것이 얼마나 복 받은 일인가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도시의 강들이 말하고 있다. 런던의 템즈강, 파리의 세느강, 뉴욕의 허드슨강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울산이 천혜를 입었다함도 태화강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울산시의 한결같은 의지와 시민들의 열정으로 가꾸며 보존한 결과가 오늘의 태화강 모습이지만 여기서 더 소중하게 갈고 닦아 후손에 물리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일 것인저…. 최종두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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