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중구 원도심의 문화의 거리(크레존~옛 울산초등학교)에 설치돼 있는 간접조명 벤치가 4개월만에 균열과 결로현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7억원이나 들여 특별한 벤치를 설치했으나 그 값어치를 못한 것도 문제이지만 좁은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 부담스러운 벤치를 만든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기능면에서 조명과 벤치를 겸한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거리의 절반을 뒤덮는 거창한 벤치는 애초에 무리였다. 이를 계기로 문화의 거리를 뒤덮고 있는 조형물과 각종 시설물, 가로수까지 전면적으로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문화의 거리를 조성할 당시만 해도 이 곳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보도블록을 새로 깔고 간판을 정비하는 것으로는 문화의 거리라는 인식을 심기에 역부족이었다. 조형물로 치장을 하고 주차를 막기 위해 화분을 가져다놓고, 조명도 화려하게 늘어놓는 등으로 많은 것을 채워서 문화의 거리라는 사실을 강조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채워서는 안 된다.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하나둘 차근차근 덜어내는, 채움에서 비움으로 아름다움의 관점을 옮겨가야 할 때다.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도심 거리엔 가로등을 대신해 전깃줄에 전구를 매달아놓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새롭고 거창하고 반짝반짝한 것만 좋은 것은 아니다. 조명이라는 것은 스스로 돋보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주변을 밝혀주는 것이 소명이다. 조명 뿐 아니라 거리의 조형물은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소리소문없이 자신의 할일을 다하는 사람이 가치로운 것처럼 말이다.

최근 중구는 문화의 거리를 차 없는 거리로 지정하려고 했다가 상인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다. 애초에 그렇게 서두를 일이 아니었다. 이름난 유적들이 즐비한 유럽에서도 온전히 차 없는 거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찻길 다이어트’가 꾸준히 시도되고 있기는 하지만 차 없는 거리가 성공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겨우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주말에 몇시간 동안 한시적으로 보행전용으로 지정했다가 해제하는 등으로 차 없는 거리의 장점을 상인과 주민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천천히 접근한다. 인식 개선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차 없는 거리 보다 문화의 거리의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것이 먼저다. 정돈되고 세련된 문화의 거리를 통해 문화적인 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질 때 비로소 차 없는 거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울산큰애기도 대폭 줄이고, 조형물도 몇개만 남기고, 화분도 몽땅 덜어내고, 비움을 통해서 문화의 거리를 세련되게 새단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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