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울산 일차의료 역할 강화
건강마을 만들기로 삶의 질 도모
일자리 창출 등 부가적인 효과도

▲ 황연순 춘해보건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칠레가 또 다시 소란스럽다. 오래 전에도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부쿠데타로 인해 내과의사이자 병리학자였던 대통령 아덴데의 비극적 죽음이 있었다. 하워드 웨이츠킨 교수는 이를 고발하기 위해 <제국과 건강>이라는 책의 앞부분에 아덴데의 주장을 담은 논문을 소개하고 있다.

그 내용은 보건의료는 국가의 정치·경제 체계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고, 보건의료체계 내에서의 갈등은 계층화된 사회의 본질적인 갈등을 반영하며, 보건의료체계의 점진적 개혁은 사회질서의 기본적인 변화 없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또 질병은 병원체나 병리-생리적 장애로 야기되는 결과가 아니었고 영양실조, 경제적 불안정성, 직업적 위험, 열악한 주거시설, 정치 세력화의 부재와 같은 다양한 문제들이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보건의료와 건강이 기본권의 영역이면서도, 자본의 이윤추구 장소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일차의료의 공공서비스가 축소되었다고 주장한다.

의학적 처방보다 사회적 해법을 옹호했던 그였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생로병사의 문제, 이미 일하다 죽는 사회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져버린 대한민국의 문제, 이 모든 것은 사회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구조에 영향을 받은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일차의료의 공공서비스 축소의 문제는 삶의 질 향상에 도움도 안 된다.

WHO는 급격한 고령인구의 증가와 의료비 증가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차의료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차진료를 담당하는 동네의원에 초점을 두는 것은 아니고 포괄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치의제도를 제안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WHO는 일차의료가 발달하면 지역적, 비용적인 측면에서 의료서비스 접근의 형평성이 좋아지고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결과도 제시했다.

2019년 OECD 건강 통계에서 우리나라는 만성질환 수준이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연평균 경상의료비 증가율은 6.8%로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OECD 국가 평균인 2.1%보다 3배나 높은 수치다. 건강보험이 지속될 수 있을는지, 개인은 충분히 의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는지 걱정을 안 할 수 없다.

울산은 현재 표준화 사망률에서 남자사망률이 여자보다 2.3배 높고, 남구와 북구는 순환기사망률 남녀 차이가 거의 2배인 실정이다. 몇 해 전에는 뇌졸중 사망률이 가장 높은 도시가 되기도 했다.

이런 건강형평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특히 만성질환 관리는 지역보건의료 체계 혁신으로 해결할 수 있다. 장애인의 건강권 보호, 국민정신건강의 문제, 치매를 비롯한 고령인구의 건강문제 등 건강불평등의 심화문제는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고, 지역 취약계층의 건강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거시적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전략이, 미시적으로 지역차원에서 전술이 필요하다.

민간이면서도 공공성을 지향하는 사회적 경제의 역량을 보건의료분야에도 적용시켜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장을 열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WHO의 지적처럼 의료비용이 줄어들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일차의료의 역할 강화는 건강마을을 만들어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과 정주여건 강화 등은 부가적 긍정효과다.

일차의료의 역할 강화와 관련해서 이미 수도권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의료사협(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과 같은 형태로 지역사회 역량을 조직해 민간이 주도하는 커뮤니티케어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울산은 그 활동이 개인의 봉사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어서 활성화 방안이 필요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관내 보건소의 활동이 활발하고 실적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임명직 공무원의 노력만으로 일차의료의 역할 강화를 통한 건강마을 만들기는 할 수 없다. 선출직들이 일차의료에 관한 철학을 가져야 혁신적인 변화를 추진할 수 있다. 내년엔 총선이 있다. 전문분야의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관심을 가지고 사회경제적, 정치적 구조 변화로 동력을 발휘해주면 된다. 그래야 정주여건이 더 좋은, 사회적 비용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지속가능성이 높은 스마트한 도시, 울산을 만들 수 있다. 황연순 춘해보건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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