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정찬 서부초 교사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두 가지 버전의 영화 포스터가 있다. 첫 번째 포스터 속 주인공 빌리의 모습은 발레하는 여자들 사이에서 경직되고 위축된 채 권투 복장을 하고 있다. 두 번째 포스터 속 주인공 빌리는 발레복을 입고 즐거운 표정으로 함께 발레를 하는 모습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영국의 1984년으로, 아버지는 탄광촌 광부이다. 당시 영국의 대처 정부는 전국의 20개 탄광을 폐쇄하고, 인력 감축에 들어가 아버지는 탄광파업에 참여한다. 아버지는 빌리에게 권투를 배우라고 체육관에 보내지만 빌리는 체육관을 같이 쓰는 발레 수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빌리의 재능을 알아본 발레 선생님은 빌리에게 발레 수업에 참여시켜준다. 하지만 아들을 보러 온 아버지에게 들켜 발레를 그만두어야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빌리는 아버지의 강압에 시위하듯 아버지 앞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춤을 보여준다. 진심어린 모습으로 발레하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그 길로 바로 빌리의 발레선생님에게 달려가서 발레를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물어본다. 아버지는 동료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파업을 그만둔 채 아들의 꿈을 위해 탄광촌으로 다시 들어간다. 빌리는 런던 로열발레스쿨에 합격하고 발레리노가 된 아들의 공연을 보러 간 아버지의 모습, 하늘을 날 듯 멋지게 점프하는 빌리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현실 속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일보다는 남들과 비슷한 안정적인 ‘정상’의 길을 가기를 원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연봉이 높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는 것은 정상으로, 그 외는 비정상으로 기준을 두어 판단한다. 국어사전 속 정상의 의미처럼 우리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여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로 성장하길 원한다.

대한민국은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요구되는 ‘정상’의 기준이 참 높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책상에 앉아서 40분 동안 꼼짝도 않고 집중하길 바라고, 어른들 말에 고분고분 따르기를 바라고, 또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원을 가야하고, 친구도 잘 사귀어야 하고, 미술도 잘 하고, 악기도 적어도 하나 정도는 다룰 줄 알아야 하고, 태권도나 수영 하나 정도는 해야 하는 게 요즘 초등학생들이다. 남들 보다 더 많이, 남들 보다 더 빨리를 강요하기에 아이들이 스스로 탐색하고 재미를 붙일 시간을 주지 않는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우리 아이만 안해서 그 대열에서 벗어나면 엄청난 낙오자 혹은 비정상적인 아이가 될 것 같은 강박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대한민국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 정상적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부모의 욕심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의 싹을 짓밟을 수도 있다.

아이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는 부모가 아이를 바라보는 눈에 달렸다. 부모가 아이를 정상의 눈으로 바라보면, 아이는 정상으로 자라고, 부모가 아이를 비정상으로 보면, 아이는 비정상으로 자란다. 빌리의 아버지가 “남자애가 무슨 발레야” 하고 빌리를 비정상으로 보고 끝까지 반대하고, 아들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더라면 빌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소정찬 서부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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