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수가 원가의 80% 수준
저렴한 의료비에 진료의 질 저하
보험공단 의료수가 현실화 기대

▲ 김도하 김도하 내과의원장

종합병원에 근무하던 시절 해외에서 열린 학회 세미나에 참석 후 외국 의사들과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위내시경 관련 세미나였고 다들 전공이 비슷하다 보니, 외국 의사들과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각국의 내시경 수가로 이어졌다.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 내시경 수가를 말해주어야 하는데, 한참 고민하다가 너무 창피해서 실제보다 좀 더 높게 이야기를 했다. 우리나라의 위내시경 수가는 몇 년 전의 자료를 기준으로 할 때 우리와 비슷한 의료체계를 가진 일본에 비해 약 3분의1, 국민소득이 훨씬 낮은 인도의 4분의1 수준이며 미국의 80분의1 정도에 불과하다.

내시경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의료 수가가 전반적으로 매우 낮다는 사실은 일반 시민뿐 아니라 정부도 잘 알고 있다. 의료비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상상하는 이상으로 비싼 편이다. 얼마 전 미국 그랜드캐년 여행 중 중상을 입은 대학생의 귀국에 10억원이나 되는 진료비가 걸림돌이 되기도 했는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엄청난 진료비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 의료비 지출 규모는 7.6%로 OECD 평균(8.8%)보다 낮다. 그렇지만 의료 환경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칭찬할 만큼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국가적으로 의료비를 적게 지출함에도 진료의 수준은 높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런 도깨비 방망이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는 정부의 저수가 정책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수가는 원가의 약 80% 수준이다. 원가도 안 되는 수가를 받으면서 어떻게 한국의 의료는 유지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기업이라면 벌써 망했어야 한다.

의사로서 의료 수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일반 국민들이 얼핏 생각하기에 의료 수가가 낮으면 병원 가는 문턱도 낮아지고 시민들이 언제든 병원을 찾을 수 있으니 뭐가 나쁜지 모르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수가 정책은 의료를 심하게 왜곡했고 벌써 국민의 건강을 위협한 지 오래 되었다. 한국 의료는 지금 깊은 저수가의 늪에 빠져있다.

저수가 체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선 박리다매 진료를 해야 한다. 최대한 많은 인원을 진료해야 하는 것이다. 의료 기관을 어느 정도라도 운영해 가기 위해서는 외래환자 기준으로 적정인원의 두 배 이상을 진료하거나 그에 준하는 입원 혹은 시술 등을 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병원마다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개별 환자와 충분히 대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환자들도 진료비에 별 부담이 없으니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옮겨 다니며 닥터 쇼핑을 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검사도 요구하게 됐다.

이러한 왜곡된 의료 현실이 통계로 잘 나타난 것이 압도적 세계 1위의 갑상선암 발병률로, 지난 20년간 약 30배 증가했는데 영국에 비해 15배, 미국에 비해서도 4~5배 높은 수치다. 원자력 사고 같은 큰 재앙이 없는 상황을 감안하면 자연 증가로는 보기 어렵다. 저수가로 몸부림 치는 의사들의 과잉진단으로 일어난 부끄러운 현상일 수 있다고 뉴욕타임즈에도 소개되었다. 대장암 발병률도 세계 1위에 올랐는데, 고기를 별로 많이 먹지 않는 우리나라가 북미나 유럽 국가들보다 높은 것은 자연 증가로 보기 어렵다. 필자는 갑상선암과 비슷한 현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저수가를 현실화하고, 왜곡된 의료를 바로 잡고자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삭발에 이어서 지난 여름에는 단식투쟁을 하다 쓰러지기도 하고, 의사들의 시위는 청와대앞, 복지부 청사 앞에서 이어지지만 언론과 시민의 관심을 크게 못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 정부는 비급여의 급여 전환을 통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들어주는 급진적 보장강화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선의에 반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 정책 시행 후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건수는 약 2배 증가했고, 본인 부담 진료비가 싸지니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더 극심해졌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한국 의료를 더욱 왜곡시키고 있지 않나 걱정된다.

너무나 심한 저수가 정책으로 국민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합리적 판단으로 수가를 현실화해야 하고, 한정된 의료자원을 검증되지 않은 요법 등에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 현명한 의료비 지출형태를 보여주어야 한다. 마침 보험공단이 적정수가 현실화를 위한 원가산정을 다시 하고 있다니 기대를 해본다. 김도하 김도하 내과의원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