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실용음악도

한 국가의 정치수준은 곧 국민수준
공식 석상에서 국회의원 등장하면
언제나 앞자리 내주는 우리네 현실
‘통촉’을 고하던 조선 때보다 못해
직업활동엔 봉급 반대급부 이외에
사명감·자기희생·자긍심 등 존재
인격·자질·능력 정치인 필수조건
유권자 검증 위한 심사관문 필요

20여 년 전, 당시 주요일간지 정치부장이었던 나의 절친(切親)에게 물어보았던 적이 있다. ‘예를 들어 학식으로든 인격이로든 나무랄 데 없을 뿐 아니라 주위의 존경을 듬뿍 받는 교육전문가 100명이 2박3일간 한데모여 우리나라 교육의 장래에 대해 진지한 세미나를 열었다든지, 우주과학자·재료공학자·엔진공학자들이 머리를 모아 우리나라의 우주발사체에 대한 기술융합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였다든지, 음악·미술·연극·영상 전문가들이 모여 우리 예술문화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였다든지…. 이런 중차대한 일들은 왜 언론에서 주요뉴스로 다루지 않아? 혹여 다루더라도 왜 말미에서 한두 마디 언급에 그치고 마는 거야? 반면에 소위 영향력 있다고 일컬어지는 정치인들 몇 명이 식당에 모여 밥·술 먹으면서 쓰잘데 없는 얘기-내가 보기엔 그러하다-를 나눈 사실은 얘기주제와 관계없이 온갖 예측과 함께 톱뉴스로 대문짝만하게 다루잖아. 도대체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일인가? 난 보일러·전기·자동차수리, 유리창 틀·마룻바닥 제작, 세탁수선, 이발미용, 요리 등 분야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우리 동네달인들이 여의도나 지자체의 정치인들보다 일상생활에 훨씬 더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엔 인격과 교양은커녕 정의감조차 없고, 못하나 박을 줄도 모를 것 같은, 없어도 그만일 것 같은 정치인들이 유난히 득세하는가? 왜 너도 나도 정치인들을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우러러 받드는가? 이러한 풍조는 바로 언론이 만드는 거 아닌가? 언론인들이 합세하여 정치기사를 뒷면 구석에 아주 간단하게 언급하든지 아예 없애든지 함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격하시키는 것이 어떠냐?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든 그저 정치얘기 뿐이다. 바야흐로 우리나라는 대한정치공화국이다. 국민이 정치얘기 좀 안하기 위해선 언론이 각성해야 하는 거 아니냐?’ 물론 정치의 현실적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수십년간 하고 한날 벌이는 국민의 정치이야기에 더는 참을 수 없었기에 던진 일종의 하소연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정치는 일상생활에서 매일매일 피부로 느낄 수는 없지만, 국가의 정체성을 포함하여, 국방, 외교, 교육, 경제, 건강, 안전, 복지, 문화 등 국가안위는 물론 국민의 생존과 생활과 행복에 직결된 각종 제도를 만드는, 어찌 보면 국민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가지는 자들의 행위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중요하다’라고 얘기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엉뚱하게도 ‘정치기사를 일면에 안 쓰면 신문이 안 팔려’라는 것이었다. 과연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다. 이유가 다시 나에게 돌아온 셈이었다. 결국 어떤 나라의 정치수준은 그 나라 국민수준이라는 말이렷다. 우리는 그냥 웃으면서 술잔만 기울였었다.

요즘 들어 당시의 그 생각이 스멀스멀 다시 난다. 무슨 자리에 국회의원이 나타나면 왜 모두 일어서서 그에게 얼굴도장 찍으며, 그에게 가운데 자리를 내어 주는가? 정치인의 최고봉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나 국무회의를 주재하면 왜 혼자만 얘기하고 나머지 참석자들은 받아쓰든지, 테이블 밑에 공손히 두 손 모으고 있어야 하는가? 그런 분위기에서 과연 어느 누가 자기의견을 말할 수 있겠는가? ‘상감마마, 아니 되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하며 엎드려 청하기라도 했던 400~500년 전 조선시대에조차 비할 수 없이 비굴해 보인다. 국민은 왜 그렇게 이상한 회의모습을 거의 매일 보아야 하는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름의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는 봉급 받기 위한 것 외에 플러스 알파(+α)가 반드시 있다. 학교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의 사명감과 자긍심이 있고, 의사들은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데 있어 역시 사명감과 자기희생이 있을 것이며, 식당주인은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여 행복감을 부여하고 반대급부로 자기보람도 느낀다. 공무원도, 회사원도, 미용사도, 변호사도, 공인중개사도, 가게주인도 모두 그러하다. 정치인 집단도, 국민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고, 더 안전하고 풍요로운 국가를 만든다는 사명감과 애국심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봉급만 받기 위해 그 직업을 가지는 사람은 단연코 없을 것이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리하여 어떤 직업이라도 입문하기 전에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 인성이 갖춰져 있는지를 심사하는 관문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군인, 기자, 교사, 의사, 변호사, 회계사, 공무원, 회사원, 미용사, 요리사, 간호사…. 그 어느 직업도 소정의 시험에 합격하든지, 학위증·자격증·허가증을 취득하든지, 적어도 건강검진과 면접이 필요하다. 그러나 소위 가장 중요한 일을 한다는 선출직 정치인만은 예외이다. 얼마 전 어떤 유튜브에서, 외신기자의 영어질문은 차치하고 통역내용도 이해 못하고, UN에서 영어문장 읽는 것도 안 되고, 회의할 때마다 종이에 적힌 것을 읽는 모습을 꼬집으며 대통령 입후보시 교양과 상식, 기초외국어에 대한 자격시험을 치르게 하자라는 농담어린 주장을 하는 것을 보고 ‘좋아요!’를 누른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자격시험을 정치인 모두에게 확대하여 적용하면 어떨까? 일컬어 ‘국회의원 출마자격시험’. 도로를 놓겠다, 국립대학을 유치하겠다… 등 공약(公約)보다 더 중요한 건 정치인의 인격과 자질과 능력이 아닐까? 하다못해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그럴진대, 표를 얻으려면 적어도 유권자들보다는 나은 구석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실용음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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