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봉 사회부 차장

울산 울주군이 행정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상식을 벗어난 일 처리로 행정의 신뢰도를 저하시키고 있다. 촉박한 시일 탓에 조급증을 내면서 가속 페달을 밟다 보니 무리수를 연발하는 형국이다. 최근 열린 울주군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는 이런 군의 행정처리에 대해 순서가 바뀌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군은 사회 초년생인 만 18세 청소년이 특성에 맞는 직업이나 전공을 찾을 수 있도록 1년 동안 총 200만원을 지급하는 청소년 성장지원금 지원사업을 추진했다. 군은 내년도 지원금 42억여원을 2020년도 당초예산안에 편성해 의회에 제출했고, 사업의 근거가 되는 ‘울주 청소년 성장지원금 지원 조례안’도 의회에 제출했다. 의회의 동의만 얻으면 즉시 추진될 것처럼 보였던 사업은 보건복지부와 협의 불발로 무산됐다. 이 사업은 보건복지부의 승인이 없으면 진행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그럼에도 군은 긍정적인 교감을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승인을 낙관, 예산을 편성하고 조례안까지 제출했다가 사단이 났다. 시급히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사업이었다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보건복지부와의 협의를 끝마치고 진행해도 큰 문제가 없는 사업에 무리수를 두다가 탈이 난 것이다.

특히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루한 협의를 진행한 상황을 감안하면 추진에 더욱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군은 결국 사업을 원안대로 추진하는 것을 포기하고 조례안을 자진 철회했다. 이에 따라 내년 사업비로 편성한 예산은 불용처리돼 40억원이 넘는 사업비가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전까지 허공에 뜨게 됐다. 조례안도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을 편성한 것은 극히 이례적으로 결국 군은 의회로부터 ‘기가 막힌다’ ‘심사숙고해서 일을 처리해라’ 등의 질타를 받았다.

일 처리의 선후가 바뀐 경우는 또 있다. 울주군은 매년 9~10월 열리는 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내년부터 봄으로 앞당기기로 했다. 매년 가을철에 행사를 열면서 태풍이나 집중호우로 인해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고, 특히 올해는 영화제 기간 중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행사 일부가 취소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비가 많이 오지 않는 봄에 영화제를 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의 개최시기는 ‘울산 울주군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운영 조례’에 ‘매년 9월에서 10월 중 개최하며 세부 일정은 별도로 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군은 의회와의 사전 조율없이 내년 개최시기를 이미 4월3~7일로 못박았다. 그럴 확률은 극히 낮아 보이지만 군의회가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내년 영화제 개최는 사실상 불발된다.

삼남면 교동리 일원에 추진 중인 독립운동 기념전시장 건립사업 역시 같은 경우다. 폐숙박업소를 매입해 전시장을 만들 계획인데, 아직 관련 용역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지와 건물부터 매입하려다 앞뒤가 바뀌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모든 정책에는 선후가 있고 완급이 있기 마련이다. 울산 기초지자체 가운데 가장 많은 예산을 보유한 울주군의 행정 규모를 감안하면 과정과 절차는 대단히 중요하다.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보자거나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일 처리로는 주먹구구식 행정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행정은 강력하되 절차를 지켜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이는 곧 행정의 신뢰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춘봉 사회부 차장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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