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무역분쟁 등 ‘갈등의 한해’
2019한·아세안 정상회의 계기로
좋은 이웃나라 많이 만들어지길

▲ 김광수 서강대 로스쿨 교수

2020년 달력을 받으니 올해도 벌써 한 달밖에 남지 않았구나 하고 실감한다. 기해년이 저물고 경자년 새해가 다가온다. 해마다 연말이면 가는 해 앞에 다사다난이라고 하는 수식어가 붙는데 2019년도 예외는 아닐 듯하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느끼는 사건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북미회담의 교착, 한일무역 분쟁, 법무장관 임명을 둘러싼 진영 간의 첨예한 갈등을 올해 중요한 사건으로 꼽고 싶다.

지난 일 년 간 칼럼을 연재해 오면서 마무리하는 글을 시작하니 감회가 새롭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살면서 평소에 생각한 바를 울산의 발전과 연결시켜 제안하고자 했다. 평상심을 유지하고, 대안을 모색하며 나름 과학적인 방법에 입각하고자 노력했는데 독자들에게 의도가 잘 전달되었는지 걱정이 앞선다. 독자 중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획기적인 글을 주문하기도 했는데 필자의 능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고, 한편 자연스러운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고 믿기에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하는 이야기로 시종하여 일면 송구한 마음이 든다.

한일 간의 무역분쟁은 지소미아의 종결과 관련되어 연말까지 갈등이 계속될 듯하다. 청운의 뜻을 품고 30대 초에 동경대에 유학을 갔을 때만 해도 우리와 일본의 격차는 상당했다. 잘 정비된 지하철이며 캠퍼스에 가득한 아름드리 나무며 고급의 가전제품을 보고 기가 많이 죽었다. 당시 일본은 한 달에 10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내며 잘 나가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이후에 일본의 경제는 침체되고 우리 무역이 호조를 이루면서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 동경에 가도 신기해서 이목을 끌만한 것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식민지배 가운데 독립운동에 헌신했거나 강제징용 등으로 고통당한 분들을 생각하면 역사문제를 덮어둘 수가 없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 수상은 폴란드에 가서 유태인 희생자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과거의 잘못을 빌었는데 일본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과거에 매일 수도 없다. 오스만은 15세기 중반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지중해와 아프리카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 일대에 대제국을 형성했다. 제해권을 놓고 베네치아 왕국과 키프로스에서, 로도스에서, 몰타에서, 레판토에서 끊임없는 전쟁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는가? 에게해와 지중해의 좁은 바다에서 서로 싸우는 동안 역사의 무대는 대서양으로,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이 차례로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오스만은 제1차 대전에 참전하여 독일편을 들다가 나라가 망하고 모든 영토를 잃고 말았다. 그래서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에(Keep close your friend, keep your enemy closer)”라는 영화 ‘대부’의 명대사가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북구의 작은 나라 핀란드는 세계대전 때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에서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국민들의 죽음이라는 고통 위에서도 전후에는 러시아와 친교하고 서방과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독립을 유지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선진국으로 거듭났다. 강대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마땅한 우방이 없을 때는 외교와 교육 그리고 국민들의 단합된 힘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 개인이나 국가나 위기를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는 배경에는 개방, 연대 그리고 혁신의 정신이 있다. 우리와 공통의 언어를 쓰는 나라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이웃 나라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한·아세안 정상회의는 관계국 국민과 기업인 등 약 1만 명 이상이 참여하여 우리와 아세안의 평화와 번영을 증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신남방 정책의 기념비적 행사로 평가받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국력이 신장되었고 아세안 국가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기운을 받아 내년에는 국내외 갈등을 봉합하고 모두 화합하여 국력을 신장시키는 원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광수 서강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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