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산업의 눈부신 진화로
산업화시대 인재 정책은 구태
세대변화에 맞춰 환경도 변해야

▲ 김성열 울산과학대 컴퓨터정보학부 교수

2019년 하반기에 개봉된 ‘82년생 김지영’은 나름 화제가 된 영화이다. 잔잔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공감하고 눈물 흘릴 내용이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평점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등 젠더 갈등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이야기는 ‘지영’이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한국에서 많은 30대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인 상황을 너무도 잘 반영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우리는 이 영화 속에서 다른 지영인 엄마 ‘미숙’을 만날 수 있다. 남자 형제들의 앞길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한국 근현대사에서의 지영인 ‘미숙’은 딸 지영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 중 미싱 일을 하다 다친 손가락의 상처에서 어머니 세대의 많은 지영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우리 근현대사에서의 산업화 과정과 달라진 우리의 현실을 불현듯 인지하게 한다.

1970년대 서울 창신동은 한국 봉제 산업의 메카로 한국의 산업을 이끌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 동남아 등에 자리를 내주고 예전만 못한 상황일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지할 수 있다. 산업화 되어가던 그 시절, 십대에 일을 시작하여 가족들을 부양한 이들은 이제 환갑의 나이가 되었다. 30~40년의 경력을 지닌 환갑 가까운 베테랑 봉제사들에게 그 일을 배워보려는 사람들이 있을 법도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유럽은 패션으로 유명한 나라들이 있다. 디자인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그 나라들에서 공부해야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장인의 손으로 한땀한땀 지은’이라는 표현을 듣곤 했다. 디자이너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능공의 역할과 노력을 표현한 글이라는 생각이 드는 문장이다. 하지만 몇 년 전 영국의 유명 브랜드 ‘버버리’조차도 자국 생산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한다는 소식은 큰 이슈가 되었다.

봉제 일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한땀한땀 지은’에 의미를 두며 배우려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없다. 이 일은 중국과 동남아로 이전되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것이 되어 가고 있다. 또한 이 일은 기계화되고 자동화되고 있다.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고 가족을 부양하던 기술과 산업은 이제 어쩌면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우리가 접하는 또 다른 변화의 한 면이다. 한국의 청년들에게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재단사, 제봉사의 꿈을 심어주는 것은 이제는 어려운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재’가 되어야 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산업화 시대에 강조되었던 인재형이 ‘I’자형 인재(전공 한 분야에 능통한 인재)였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다. 정보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T’자형 인재(폭넓은 교양과 전공에 능통한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의 요구였다.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Π(Pi)’자형 인재(폭 넓은 교양과 두 개 분야의 전공에서 능통한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자형에 대한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배워가는 젊은이들에게 산업화 시대의 ‘I’형 인재가 되라는 주문은 어쩌면 구시대적 교육일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장인의 손길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젊은 세대들은 변화된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울산이 창신동의 오늘과 겹쳐지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울산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고, 그게 꼭 좋은 느낌으로만은 들리는 않는 한마디가 있다. ‘돈 벌러 왔다’. 이 말이 왠지 산업화 시대 창신동에 몰려갔던 우리의 소리 같다.

변화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그들을 위한 환경이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아이에게 봉제사만으로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살기 좋은 도시 울산’은 표어만으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창신동의 ‘Made in Korea’는 K-패션의 중심이지만 청년은 없다. 김성열 울산과학대 컴퓨터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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