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를 개입으로 보고 공격하거나
무리한 방어기제로 권력을 절대화
제도 통한 기계적 견제·균형 필요

▲ 김주홍 울산대학교 교수

정치권력은 제도적으로 철저하게 분립시키고 그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상호 견제케 하며 그 견제가 균형을 이룰 때, 국민들의 기본적 자유와 인권 그리고 정치적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신장될 수 있다. 아무리 사람이 먼저라도, 권력을 굳이 ‘제도를 통하여’ 기계적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얽어매야 하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절대적 확신이 언제나 보장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기 마련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던 당시 국민들에게 했던 약속들을 상기해 보자.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어떠한 권력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마련하겠습니다.…저에 대한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습니다.…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약속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는 부정적이다. 국론을 분열시키고, 제1 야당을 적대적으로 대해왔으며,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인 ‘공수처’를 만들겠다고 일방적으로 밀어부쳤고, 소위 ‘캠코더 인사’라고 해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만 기용하였으며, 불리한 여론을 수시로 덮어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 결과,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은 불공정했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 정부가 지혜를 얻기 위하여 ‘멈춰 생각할’ 기회와 시간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게재를 스스로 거부하고 오히려 권력을 절대화하는 길로 나아간 것이다.

‘권력의 절대화’가 그 무슨 특별한 것이 아니다. 권력자가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을 제도적이며 일상적이고 건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견제를 참견이나 개입으로, 비판을 비난이나 질책으로 간주하여 공격하고 그에 대한 무리한 방어기제를 만들면, 그것이 권력의 절대화이다.

헌법으로 해야 할 것을 법률로 해치우려는 일, 언론과 여론의 비판과 대안제시를 원천봉쇄하기 위하여 그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일, 여당의 정치적 기능을 ‘거수기’ 정도로 축소시키고 자율성을 저해시키는 일, 제1야당에 대한 탄압과 야권에 대한 분열을 획책하는 일,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버리려는 일, 정권핵심부와 청와대의 권력형 비리와 국정농단을 덮어버리려는 일 등등은 권력절대화의 단계단계마다 나타나는 익숙한 징후들이다.

우리는 소위 ‘십상시(十常侍) 사건’이다 해서 5년 전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을 기억한다. 그 때 제대로 권력에 대한 견제가 이뤄졌다면 헌정사 최대 비극인 대통령 탄핵은 없었을 것이다. 그 때에도 청와대에 파견되었던 감찰관 한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었다. 그런데 전 청와대 감찰관으로 근무했던 서울동부지검 수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조국 사태로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이후 유재수 전 금융위 국장 감찰무마 의혹이 수면에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울산시장선거 청와대 개입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현 검찰 수사관의 안타까운 비극이어서, 5년 전의 상황과 장면이 많이 겹치는 느낌이다.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답변하는 것을 보니, 제대로 사태가 수습되기 어려울 것 같다. 덮으려 한다고 덮이지 않으며, 지우려 한다고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 간 우리들 모두가 경험했던 역사적 교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보다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국민들 앞으로 나와야 한다. 언제나 정직함이 가장 좋은 정책일 것이다. 김주홍 울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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