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현 남목중 교사

어느덧 12월. 연말이네요. 현재 근무하는 학교에 오래, 아주 오래 있었기에 내년이면 다른 학교로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이 낯설고 두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잘 마무리할까 하는 고민으로 잠을 설치고, 딱 1년만 더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허무한 바람을 안고 학생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2013년 2월. 정기 전보 인사 발표가 난 후 남목중학교에 처음 들렀을 때가 떠오릅니다. ‘딱 2년만 있다가 간다고 해야지’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싶었던 저는 두 번째 학교가 또 중학교인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오자마자 맡은 담임반 학생들을 대하는 일과 전공이 아닌 사회 수업을 준비하는 것도 어찌나 힘들던지. 그때 담임반 아이들과 저는 유난히 잘 안 맞았어요. 선생님이 젊다는 건 그만큼 아이들과 잘 소통할 수 있는 장점임에도 그런 장점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 채 1년이 흘렀지요.

사는 건 늘 계획대로 되지 않죠. 다른 학교로 떠나고자 했던 그 2년 후 저는 육아휴직 중이었습니다. 아기가 밤낮을 가리고 저녁잠을 길게 자면서부터 밤이면 밤마다 학교와 관련된 글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복직을 한 뒤에는 학교 근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왜 꼭 고등학교에 가야 할까? 사회나 과학 선생님들은 중학교보다 고등학교에 있는 것이 낫다던데, 모두 다 고등학교로 가버리면 중학교에는 누가 남을까? 신규 교사들만? 육아에 전념하는 교사들만? 집이 가까운 교사들만?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장점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결국 계속 중학교에 남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합니다. 학교에서의 일상이 항상 즐겁고, 학생들이 제 지도에 잘 따라서가 아닙니다. 쉬는 시간이면 “학교에는 밥 먹으러 오는 겁니다. 오늘 급식은 뭐죠?”라며 옆자리 선생님들과 너스레를 떨다가도 학생들에게 사건, 사고가 발생함과 동시에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강경 모드로 전환해야 하는 일상이 늘 즐거울 수는 없지요. 요즘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지도가 조금이라도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바로 이의제기를 하는 만큼 선생님도 나름대로의 합리성과 논리를 가지고 학생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요.

그런데 말이죠. 초등학생의 순수함과 고등학생의 성숙함 사이에서 허우적대며 자아탐색을 하는 아이들의 길잡이가 된다는 건, 예상 외로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단순하고 황당한 질문에 답을 해줄 때마다 “우와! 선생님은 그런 것도 다 알아요?”라며 놀라는 아이들. 이 시간이 그들의 삶에 봄바람처럼 스치는 찰나일지라도 같은 곳에서 같은 순간을 보내는 남목 아이들을 위해 저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본받을만한 무언가를 한 가지는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요.

그동안의 추억을 되새기며 연말을 보내고 나면 마지막 수업시간, 마지막 인사에 대한 답을 얻을 것 같습니다. 저처럼 내년이면 정든 아이들과 정든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 선생님의 마지막 인사는 무엇인가요? 이정현 남목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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