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수 울산판화협회 회원

자차보험은 ‘자기차량 손해보험’을 줄여 이르는 말이다. 그랭이기법은 기둥, 목재, 기와 따위를 놓일 자리에 꼭 맞도록 바닥의 높낮이에 맞추는 기법. 또는 석축 쌓기에서 아랫돌이 놓인 위에 윗돌을 아랫돌 모양에 맞추어 깎아 쌓는 기법을 말한다. 그날 오후는 폭우가 쏟아졌고, 내 마음도 조급했던 모양이다. 신호대에서 파란불이 켜지자 재빨리 자동차 액셀을 밟았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 속에 달렸다. 뒤따라오는 차도 보이지 않고 차선을 바꾸었다. ‘드르륵’ 긁히는 느낌을 받았다. 접촉사고다. 도로 한쪽에 차를 세우고 먼저 상대 차의 승차인원과 피해 상태를 확인했다. 외제 차로 보이는 스포티한 승용차였다. 젊고 건실한 남자가 둘 내렸다. “다친 곳 없어요?” 내가 물었다. 다행이 다친 상태는 아니었다.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려 나의 차와 자신의 차 상태를 확인했다. 나도 상대 차의 상태를 확인했다. 폭우 속에 차의 긁힌 상태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충돌로 인해 표면이 들어간 부분은 없었다. 내가 긁힌 상태를 유심히 보고 있자니 상대 차의 젊은이가 나에게 말했다. “어르신 이 정도면 저의 보험회사에서 다 알아서 할 것이니 너무 걱정마셔요.” “약간의 긁힌 상태이니 자차처리 하겠다”는 뜻이다. 며칠 뒤 나에게 통보가 왔다. 내가 물어야 할 배상액이 270여만원이란다. 조금 긁혔지만 외제차라서 수리비가 많이 들었다 했다. 수리기간 중 렌트비까지 포함한 금액이란다.

재활용가게를 운영하는 친구가 있었다. 조금 오래된 포터였다. 비보호신호지역에서 유턴하다가 뒤에서 유턴하던 승용차를 받아버렸다. 엄청나게 비싼 외제고급차였다고 한다. 친구는 “큰일이다 저 차의 수리비를 감당하자면 가게를 다 팔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단다. 조금 지체할 시간도 없이 조수석에 타고 있던 젊은 남자가 내렸다. 자신이 해결하겠다며 탔던 차는 보내버렸다. 그러면서 자기 차를 한쪽에 세우게 하면서 자신을 안심시켜줬다. 수리비로 200만원을 받았단다. 평소 그냥 달고 다녔던 부속까지 그 경비로 모두 수리하고도 몇십만 원이 남았다고 했다. 그 친구는 평소 재벌 또는 부자(富者)에 대한 혐오의 편견을 버리게 됐다는 말을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약간 긁힌 정도의 국산차라면 그리 많은 수리비가 들지 않았을 것이다. 고급 외제 차의 높은 수리비를 국산 가해차량이 부담해야 한다는 법으로 취해진 조치다. 같은 도로를 다니면서 고급 외제 차와 접촉했을 때 상대적 수리비가 많이 든다. 이는 계층 간의 이질감으로 느낀다. 부자가 서민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 그리고 의심도 간다. 상대 차의 차주는 분명히 나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 마셔요. 저의 보험사에서 다 알아서 할거예요.” 약간의 피해는 자차처리하겠다는 뜻이었다. 상대 차의 차주는 나에게 배려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보험사에서 무시했을 수도 있다. 공자도 이렇게 말했다. “먹고 사는 일에 너무 깊이 관여하지 마라.” 보상직원으로 일하는 사람은 이렇게라도 조금 더 벌어야 하겠지. 외제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상대 차에게 증오심도 없어야 한다. 그러나 억울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11월25일 ‘울산 아시아국제판화제’가 중구 문화의 거리에서 막을 올렸다. 초청받은 말레이시아 작가를 내가 유명사찰로 안내했다. 사찰은 한국의 전통건축을 공부하기에 최고의 현장학습장이다. 그랭이기법 건축을 보여줬다. 자연석으로 된 막돌초석 위에 목재기둥이 얹혀있다. 돌을 깎은 것이 아닌 기둥을 깎아 돌에 맞추었다. 쌓인 석축도 보여주었다. 윗돌을 깎아 아랫돌에 맞추었다. 왜 이리 어렵게 공사했느냐고 묻는다. 천 년간의 지진도 견뎌낸 지혜다. “많이 가진 자, 높은 자리에 있는 자는, 낮은 자리에 있는 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신 살을 깎았다”라고 설명했다. 듣고 있던 외국작가 두손 모아 합장한다. “자기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같은 정신이다.” 많이 가진 자의 역할이다.

박현수 울산판화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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