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영역 배제한 정치적 정책 결정
근거·타당성 부족 질적 저하 우려
정책만큼은 전문영역이 확대돼야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정부정책이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정책 내용의 일부분만 바뀌어도 여러 사람과 집단의 이해관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 정책의 새로운 내용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거나 기존 정책을 변경할 때 분명한 근거나 타당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민들은 정책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정책이 충분한 근거도 제시되지 않은 채 느닷없이 변경되는 경우가 너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는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더 심하면 정책혼란으로 이어져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책변화의 상당 부분이 정치적 고려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더욱 문제이다. 전문가들이 모여 일정한 기간 동안 연구와 분석을 하고 이 결과를 토대로 결정되어야 할 사안들이 정치적 판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정책결정에는 정치가 담당해야 할 영역과 전문가들이 수행해야 할 영역이 있다. 정치권력을 가진 집단이 정치적 고려에 의해 얼마든지 정책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영역의 협조와 도움을 배제한 채 오로지 정치적 판단으로 결정된 정책은 타당성과 합리성이 결여될 가능성이 크며, 이로 인해 정책실패(policy failure)로 귀착될 확률이 높다. 대표적인 사안들이 바로 교육, 에너지, 외교 분야에서 나타나는 전격적인 정책변화의 추진이다.

교육부는 최근 대학입시에서 정시 선발비율을 확대하도록 결정했다. 대통령이 정치적 고려에 의해 정한 지침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교육문제는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이를 잘 파악해야 하고, 무엇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돼야 한다. 대통령의 단발성 지시에 따라 급하게 결정될 사안이 아니다. 이 결과 현재 중2부터 고2까지 매년 서로 다른 입시제도가 시행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게 됐다. 에너지정책도 마찬가지이다. ‘탈원전’ 자체는 정치적 고려에 의해 결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비중확대 정책의 추진시기, 방법, 절차 등 구체적 사항은 전문의 영역이다. 원자력, 환경, 경제전문가 등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논의한 결과를 반영하여 에너지정책의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 정상적인 방식이다. 외교정책은 또 어떠한가. 외교정책의 큰 방향은 물론 정치의 영역에서 결정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수년 동안 외교현장에서 훈련된 외교관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외교 경험이 일천한 인사들이 주요국 대사나 외교안보 요직에 앉아 어설픈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 무리하게 추진하는, ‘외교의 정치화’가 국익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들 정책사례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전문의 영역이 무시되고 정치의 영역이 과도하게 정책과정을 지배하면 정책의 질적 수준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정치는 주로 정책이 초래할 정치적 이익, 즉 지지율 상승과 같은 초단기적 ‘정치적 효능’만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정치적 결정은 장기적 안목이 부족하고, 정책의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영향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책과정에서는 정치의 영역과 전문의 영역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제대로 구성하고 체계적인 집행을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더구나 교육, 에너지, 외교 등은 장기적으로 나타날 사회적 비용과 효과를 철저히 예측하며 정책을 신중하게 마련해야 하는 분야이다. 길어야 5년 임기의 정권 차원에서 정치적 고려에 의해 완결적으로 결정돼야 할 정책들이 아니다.

정책의 ‘화끈한’ 변화를 통해 정치적으로는 반짝 단기 효과를 거둘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책실패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적어도 정책에서만큼은 ‘정치’의 영역을 축소하고 ‘전문’의 영역이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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