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은 시간과 정비례하진 않아
실제 경험으로 체화시켜야 쌓여
참경륜은 어떤 상황에서도 빛나

▲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만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만 리 길을 가 보는 게 더 중요하다!”

단 18명의 직원으로 시작하여 20여년 만에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규모의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성장한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전 회장이 한 말이다. 만 리 길을 가면서 많은 체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여러 관점의 얘기를 듣고 특히 뛰어난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되면, 문제를 보는 시야가 달라지고 어떤 일에 대처하는 능력이 길러진다는 의미라 한다.

또 삼성반도체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해서 삼성전자 회장까지 역임한 권오현 삼성전자종합기술원 회장은 그의 저서 <초격차>에서 “리더의 자질은 본성에 의한 것이 3분의 1,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3분의 2쯤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즉, 지도자의 자질은 타고난 지능과 같은 선천적인 요인보다 실제적인 훈련과 경험을 통해서 더욱 많이 키울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바로 경륜의 중요성을 강조한 표현들이라고 생각된다.

과거 모 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의 행정관을 행정에 경험이 없는 민간인들로 대폭 교체한 적이 있는데, 2년도 채 못가 상당수를 공무원으로 다시 교체하였다. 비판을 무릅쓰면서 의욕적으로 채용해 놓고 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어느 분야의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그 분야의 단체에서 활동을 하는 것과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물론 그러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그 사람들에게 중요하고 책임성이 큰 행정업무를 바로 맡기는 것은 그 만큼 위험부담이 크다. 바로 ‘아마추어 행정’ ‘실험 행정’이라는 말이 생긴 이유다. 한정된 재원의 범위 내에서 수많은 현안들의 우선 순위를 합법적·합리적으로 정해서 이를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특히 급증하는 다양한 갈등들을 지혜롭게 조정해 가야 하는 ‘행정’은 그 만한 노하우(know-how)가 필요한 것이다. 국가와 지역의 미래가 달려 있기에 더욱 그렇다. 물론 행정 뿐만 아니라 경영이나 의료 등 모든 분야에도 마찬가지다. 모든 조직에 필요한 ‘혁신’의 경우도 정확한 현실 진단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또한 실제 부딛치며 경험해 보지 않고는 제대로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경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아직 경륜을 쌓을 기간이 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거나 기간이 경과하면 자연적으로 경륜이 생기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나이는 나이테와 같이 해가 가면 자연적으로 늘어가지만 경륜은 시간이 간다고 당연히 쌓이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을 경험하면서 직접 보고 느껴야 올바른 경륜이 되는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누구든지 어느 자리에 앉히면 그 직책을 수행할 수 있다는 말인데 인사의 기본 취지와 경륜의 중요성을 전혀 모르는 데서 나오는 잘못된 말이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일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조직은 원활하게 작동되지 않을 것이며 특히 지금과 같이 무한경쟁 속에서는 심각한 상황으로 빠지기가 쉽다. 그 결과,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자격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선거과정에서의 논공행상으로 채용하여 맡겨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물의까지 일으키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고 있다.

또 혹자는 경륜이 많은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여 선례 답습이나 하는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경륜의 참뜻을 잘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참다운 경륜은 많은 일을 경험하면서 성공과 실패의 요인을 분석하고 느끼면서 체화시켜야 비로소 쌓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륜을 제대로 갖춘 사람은 급변하는 국내·외 여건 속에서 그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이나 지역과 국가는 어떠한 상황 속에 놓여 있으며 그 발전을 위해서 현 시점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항상 고뇌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다.

12월, 연말이 다가오면 또 한 해가 간다고 안타까워하거나 서글퍼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럴 필요가 없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니까.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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