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합창지휘박사

요한 슈투라우스 2세(1825~1899년)는 아버지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보다 어찌보면 더 유명하다고 해야 한다. 요한 스트라우스 1세는 ‘왈츠의 아버지’로 불렸지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왈츠의 왕’이라는 별칭을 얻었기 때문이다. 집안에서는 부자지간이지만 세계음악의 중심지였던 오스트리아 비엔나 문화계에서는 ‘왈츠의 아버지’보다 ‘왈츠의 왕’이라는 칭호가 훨씬 더 높게 여겨졌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고아 출신인 아버지에 비하면 참 유복하게 자랐다. 그래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들에게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한다며 큰 아들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은행원이 되도록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직업 음악가로 살아가기가 어려우니 음악을 절대 하지 말고 평범한 직업을 가지라는 부모들의 성화는 똑 같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취미로 음악을 배우는 것까지 막지는 않아 요한 슈트라우스 2세도 기본적인 피아노는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직업 음악가가 되겠다며 음악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자 아들을 채찍으로 마구 때려서 실신할 정도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큰아들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나 작은 아들인 요세프 슈트라우스의 음악적 본능과 재능은 부모가 말린다고 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동생 요세프 슈트라우스도 형처럼 작곡공부를 열심히 하여 결국 이들 3부자는 유명한 음악가족을 이루게 됐다. 형제간의 우애도 두터워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요세프 슈트라우스에게 자기의 오케스트라를 넘겨주어 지휘자로 활동하게 하기도 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47세가 되던 해인 1872년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톤심포니의 지휘자가 되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오페레타를 16곡이나 작곡했고, 그 중 <박쥐>는 비엔나 오페레타 최고 작품으로 평가되어 많은 연주가 되고 있다. 또 ‘왈츠의 왕’답게 500여곡의 왈츠와 폴카를 작곡하였으니 그의 별명은 우연도 아니고 과장도 없이 매겨진 것이라 하겠다. 얼마 전 우리에겐 아픈 추억이 된 도나우강의 선박사고가 있었지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세계적인 아름다운 왈츠로 자리매김하였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구천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합창지휘박사

#추천음악=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Johann Strauss,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Zubin Mehta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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