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상". 각 고을민속의 진수를 모아 강원도 동해시 망상해변에서 그 기량을 뽐내보는 한마당 잔치판 제44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울산의 놀이가 받은 상이다.

 지난 1958년, 정부수립 10주년을 기념하여 우리 전래민속예술의 발굴과 보존을 위해 매년 경연대회 형식으로 치러지는 이 마당에 울산은 여러 차례 문을 두드렸다. "쇠부리 놀이’, "물당기기 놀이", "선사시대고래잡이재현" 등의 종목으로 나갔지만 2000년 "쇠부리놀이’가 공로상에 입상하였고, 그 외는 참가상에 버금가는 노력상에 머물렀다.

 과연 울산 민속의 저변이 그렇게 얕은가? 아니다. 전국 어느 고을보다 민속의 자원이 독특하고 풍부한 곳이 울산이다. 신라 이후 중앙조정의 먼 변방이 되면서 인류학적 간섭이 적었고, 타 지방과 인적교류가 활발하지 못했던 점이 울산의 민속을 오랫동안 고스란히 지키게 해준 요소가 되었다.

 이 토양위에 우리나라 민속학의 큰 인물인 석남 송석하 선생을 배출했지만 근대화, 산업화의 물결에 휩쓸리며 울산만이 가지는 색깔이 퇴색되어 갔다.

 그렇지만 이 와중에도 우리 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방송인 정상태씨가 울산에서 쇠를 녹여내며 부른 노동요 불매소리를 다듬어 "울산 쇠부리놀이’를 만들었고, 교사 장익래씨가 우물을 파고 나서 그 우물의 물이 항상 맑게 넘치라며 산속의 정갈한 물을 그릇에 담아 우물에 합수하는 행위를 놀이로 만든 "울산 물당기기 놀이", 여인들의 놀이를 회억해 제보자를 찾아 나선 김송태 선생의 집념으로 "울산 재넘자놀이’가 생긴 것도 결코 우연히 이뤄진 일이 아니다.

 이번에 입상한 "울산 재애밟기놀이"(주최측 문화관광부는 "울산 재밟기놀이"로 발표)의 뿌리는 김송태 울산향토사연구회장이 다듬은 "울산 재넘자놀이"다. 이 재넘자는 지난 88년 몇 노파들의 제보에 의해 되살아난 여성들의 놀이로 90년 울산여상 학생들에 의해 재현되었다. 그러나 연희자의 부족, 표현 시공간의 부재, 재정지원의 결핍은 이 놀이를 보존시키지 못했다. 이 점은 다른 놀이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울주문화원이 생기면서 온산읍에 거주하는 여성회원들에게 전수, 이들에 의해 울주군민의 날을 기해 너댓차례 시연하므로 명맥을 이어왔다.

 민속은 언덕하나 너머 거랑하나 건너 표현을 달리하기가 예사다. 온산읍에서도 그랬다. 온산읍에는 이 놀이를 직접 경험한 노인들이 있었다. 칠순을 넘긴 김난자, 이봉화씨가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또 달랐다. 명칭부터 "재넘자"가 아닌 "재애밟기’란 것이다. 놀이의 순서나 노는 방법이 기존 전수된 내용과 다르다는 것이다.

 평소 너댓명의 아녀들이, 정월대보름이나 팔월한가위면 마을의 소녀에서 부인까지 모두 나와 집단 군무를 이루며 노는 여인들의 소박한 놀이가 있는데, 그 몇 과장 가운데 마치 기와를 포개듯 사람이 줄을 지어 엎드리면 그 위로 애기씨가 즈려밟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재"란 기와의 울산 방언.

 "그래, 다듬어 전국에 선보이자" 재애밟기에 연계되는 몇 가지 놀이를 덧붙였다. "옛날 놀던 그대로 노시지요. 꾸미지 말고 자연스럽게" 이 주문은 주효했다.

 다른 고을은 줄지어 들어와 마스게임 하듯 연희했는데, 울산은 달랐다. 선창자와 풍물패 등 십여명만 들어서니 모두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나 인사를 마친 선창자가 "저녁 먹은 동무들아 골목골목 나오너라"를 연호하며 넓은 잔디밭을 돌자 어디에 있었는지 구석구석에서 댕기머리 소녀에서 비녀머리 부인까지 쏟아져 들어왔다. 객석은 탄성을 질렀다.

 첫째마당 재애 밟자, 둘째마당 달 넘자, 셋째마당 씨앗받기, 넷째마당 실 감자. 30여분동안 맑은 가을하늘에 꽃이 피었다. 타 시도에 비해 가장 적은 예산과 짧은 연습기간이었지만 소박하고 각색하지 아니한 순수민속놀이는 호평을 받았다.

 울산사람 송석하 선생이 세워 초대관장을 지낸 국립민속박물관의 관장상인 은상을 수상했다. 상의 순서에 연연할 바 아니지만 울산의 민속이 인정받는 반열에 오른 쾌거다. 지금 울산에서 집단 민속놀이로 선보인 것은 위에 열거한 사례 외에 지신밟기의 전과정을 고스란히 전하는 "매귀악", 전통줄다리기의 원형인 "마두희", 맺힌 한을 풀어내는 "와아이라 고풀이굿" 등 그 저변이 매우 넓다.

 이들 울산의 색깔을 되살리자. 민속은 모든 문화의 고향이다. 세계화의 본질은 각각의 민족이 그 고유의 민속으로 형형색색 물들이는 화려한 캔버스다. 그 화폭에 울산이라는 색깔이 빠진다면 얼마나 섭섭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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