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존 관세장벽’ 일부 완화…中, 美농산물 구매 대폭 확대
민감한 쟁점은 2단계 무역협상으로?…뉴욕증시도 ‘밋밋’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휴전 모드’로 들어섰다. 미·중 1단계 무역협상의 ‘데드라인’(12월15일)을 이틀 앞두고서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의 무역갈등으로 전방위 충격을 받았던 글로벌 경제에도 다소간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미·중은 13일(현지시간) 1단계 무역합의에 도달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합의 사실 자체엔 한목소리를 냈지만, 세부 내용에서는 미묘하게 엇갈린 기류가 감지됐다.

일시적인 휴전에 들어갔을 뿐 완전한 종전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구체적인 성과가 필요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경기둔화폭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속한 무역갈등 해소가 시급한 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중이 제한적인 범위의 예비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CNBC 방송은 “합의 내용의 디테일은 애매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장 초반 오름세를 탔던 뉴욕증시는 ‘실망 매물’에 상승분을 반납하고 밋밋한 흐름을 보였다.

◇美, 기존 관세 하향조정 ‘물꼬’

합의의 핵심은 대중(對中) 추가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달 15일부터 1천6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15%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15~25% 관세가 부과된다. 

그러나 미국이 15일 관세 부과 계획을 접기로 함에 따라 일단 ‘관세 전쟁’이 모든 분야로 확대하면서 글로벌 경제에 부담을 가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된 것이다.

기존 관세도 일부 하향조정된다.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산 수입품 2천500억 달러어치에 25%, 1천200억 달러어치에 15% 관세를 각각 부과한 바 있다.

이 가운데 25% 관세가 유지되고, 15% 관세는 7.5%로 인하된다.

기존 관세들이 상당 부분 유지되는 것이어서 시장의 눈높이엔 크게 못 미치지만, 일단 기존 관세를 하향조정하는 물꼬를 텄다는 의미여서 주목된다.

중국 측도 “미국이 단계적으로 대중 관세를 취소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으로서는 ‘관세 지렛대’를 활용해 중국으로부터 농산물, 지식재산권, 기술이전, 환율 등에서 원칙적인 성과를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성명에서 “지식재산권, 기술이전, 농산물, 금융서비스, 통화·환율 등에서 중국의 경제·무역구조를 개혁하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중국 관계 부처도 심야 기자회견에서 지식재산권, 기술 이전, 식품 및 농산물, 금융 서비스, 환율 및 투명성, 무역 확대, 쌍방의 (합의 이행) 평가 및 분쟁 해결 등이 합의문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발표만 놓고 보면 그동안 미국이 요구했던 거의 모든 분야가 망라된 셈이다. 

◇농산물 구매·2단계 협상 ‘온도차’…합의문 서명도 불투명?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미·중의 입장은 곳곳에서 엇갈린다.

당장 트럼프 행정부가 초점을 맞췄던 ‘미국산 농산물’과 관련, 중국 측은 수치 언급을 꺼리는 표정이다.

중국 측은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을뿐 세부적인 구매계획에 대해선 “추후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측은 목표치인 ‘500억 달러’를 넘겼다는 입장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취재진에게 기존보다 향후 2년에 걸쳐 320억달러(약 37조5천40억원)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을 추가 구매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 시작되기 전인 2017년에 중국이 24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농산물을 구매했는데, 이에 더해 중국이 연간 160억달러씩, 향후 2년간 총 320억달러의 미국산 농산물을 추가 구매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구매는 500억 달러를 훌쩍 넘기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취재진에게 중국의 농산물 구매 규모와 관련해 500억달러를 언급했다.

 합의문의 서명 일정도 명확하지는 않은 분위기다.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내년 1월 첫째 주께 합의문 서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반면 중국은 “향후 내부 법률 평가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쳐 정식 서명을 위한 일정을 잡는 추가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는 대목은 ‘2단계 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에서 “이것은 모두를 위한 멋진(amazing) 합의”라며 “우리는 2020년 선거(미 대선)를 기다리기보다 즉각 2단계 무역합의를 위한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2단계 협상을 위해서라도 기존 관세를 상당 부분 남겨둘 수밖에 없다는 게 미국측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취재진에게 기존 관세와 관련 “우리는 이를 2단계 향후 협상에 쓸 것”이라며 “중국은 관세를 없애고 싶어하고 우리도 괜찮지만 2단계 협상 테이블에서 (남은 관세를) 쓸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합의문에 지식재산권, 기술이전, 환율 등 민감한 의제들이 두루 거론된 것도 향후 2단계 협상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중국 측은 1단계 합의문의 이행 상황을 지켜본 뒤 2단계 협상을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어수선한 무역합의 발표…막판까지 신경전?

미·중의 무역합의 발표가 매끄럽지 않게 진행되면서 시장의 혼선을 불러온 것도 이런 미중 간 입장차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무역합의 사실은 미국의 일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지만, 정작 중국 당국은 하루 동안 침묵을 지켰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합의에 대한 WSJ 보도는 완전히 틀렸다. 특히 관세와 관련한 언급은 그렇다. 가짜뉴스”라는 트윗을 올렸고, 뉴욕 금융시장의 투자심리는 일순 위축되기도 했다.

1단계 합의가 공식화된 것은 중국 당국의 기자회견을 통해서다.

중국은 현지 시각으로 13일 밤 11시(미국 동부시간 오전 10시) 관계 당국 공동회견을 개최해 1단계 협상 타결을 공식 발표했다.

애초 예정된 회견 시간에서 30분가량 늦춰진 것으로, 이 때문에 막판까지 최종 합의에 난항이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이 공식 발표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으로 합의 사실을 공식화했다. USTR도 ‘짤막한’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통상 양측 조율을 거쳐 공동의 합의문을 발표하는 통상의 협상절차와는 달리, 막판까지 깔끔하게 쟁점들이 마무리되지 않고 신경전이 이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오전 10시께 무역 합의를 최종 승인했다고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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