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세련 아동문학가

자주 접질렸던 오른쪽 발목의 고정술 후 장애판정을 받았다. 발이 퉁퉁 붓고 절름거리기를 10여년, 내가 입버릇처럼 한 말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였다. 하지만 평생을 통증에 시달린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자신이 없다. <아파서 살았다>(북드라망, 오창희)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이 책은 스물한 살에 얻게 된 류마티즘에 평생을 묶여 산 저자의 수기형식이다. 아픔의 기록들을 촘촘하면서도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풀어썼다.

병이란 대개 어느 정도는 스스로의 치부가 수반된다. 내 발목의 장애도 그렇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종종 접질린 것이 원인이다. 두어 번 접질렸으면 더 조심을 하고,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라도 받았어야 했다. 무심한 성격에, 무지와 무식이 합세해서 무모하게도 방치했던 결과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이유다.

저자의 경우는 다르다. 스스로는 물론 의사조차 원인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류마티즘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노력으로도 낫기는커녕 현대의학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다. 그 집요하고 무시무시한 병마에 온몸이 묶인 채 비틀거리며 살고 있다. 몰아내려는 노력도 부단히 했다.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의지로도 포기로도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 그 막막함을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담담하게 써내려간 저자의 마음이 내 몸 구석구석을 찌르는 듯했다.

그녀의 선택은 병과 더불어 살기였다. “산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 안의 생명력을 북돋워 가는 여정이다.” 저자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럼에도 ‘아파서 살았다’는 책의 제목은 쉽게 수긍이 안 된다. 여북하면 그런 말을 했을까. 저자의 아픔이 관절 곳곳을 후비는 느낌이다.

책에는 불치병으로 삶을 포기하려는 이들을 향한 호된 꾸지람도, 자질구레한 잔소리도 없다. 견디기 힘든 고통의 기록임에도 넋두리조차 없다. 담담한 서술도 빼어난 문장력이 아니다. 그럼에도 첫 장에서부터 빨려든다. 진정성이 담긴 이야기가 강한 흡인력을 지닌 까닭이다. 웬만한 수필집보다 잘 읽히는 것도 대단한 장점이다. 고통을 글로 풀어냄으로써 저자에게 용기가 된 기록은 건강한 독자들에게도 위안이 될 거라 확신한다. 장세련 아동문학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