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그랜트 대통령이 공휴일로 지정
종교 넘어 하나의 연말문화행사로 발전
코카콜라 홍보로 산타의상 빨간색 고정

▲ 한규만 울산대교수·영문학

크리스마스는 한국에서 성탄절 또는 기독탄신일로 불린다. 한국에서도 성탄절이 아기예수 탄생을 기리는 날임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그리고 종교가 다르더라도 이를 인정하고 축하해준다. 한국 스님들의 ‘예수탄생’ 축하와 수녀님들의 ‘부처님 오심’을 축하하는 모습은 신선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한국 성탄절은 미국문화 유입과 함께 들어온 풍습이다. 미국 성탄절 제정 과정과 전통을 살펴봄으로써 미국문화 현상을 분석해볼 수 있다.

성탄절의 주요 연관어는 ‘선물’ ‘파티’ ‘여행’ ‘가정’ ‘산타클로스’ ‘트리’ ‘캐럴’ ‘호두까기 인형’ ‘자원봉사’ 등이다. <미국의 소리 voa>에 따르면, ‘선물을 사려는 이들로 가게가 북적여서 경제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물질보다는 크리스마스 정신을 이어받아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요양원을 방문하여 노인들을 위문’하기도 한다. 한국에도 이 두 가지 모습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미국의 어떤 교회들은 특별예배를 진행하여 이 날을 축하한다. 한편 어떤 교회들은 예배를 취소하고 신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배려한다. 무소유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흥미로운 결정이다. 한국의 대형 교회들은 이날 교인들을 최대한 교회로 불러들여 성대하게 축일을 치른다. 결과적으로 많은 축하금을 보유하게 되는 날이다. 과연 이들은 노숙자, 과부, 고아, 병약자와 소외된 이웃을 잘 살피라는 예수의 정신을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은 미국이나 한국 모두에서 성탄절이 공휴일이지만, 17세기에는 공휴일도 아니었고, 심지어 이 날을 기념하는 것조차 금지되기도 했다. C.클라인(history.com)에 따르면 1630년대 미국 매사추세츠 청교도들은 백성들의 크리스마스 축하를 금지시켰다. 크리스마스날, 그들은 가게와 학교는 열고, 교회 문은 닫으라고 명했다. 1659년 보스턴에서 이를 축하하다가 발각되어 ‘법을 어긴 죄로 5실링의 벌금이 부과’되기도 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정부의 억압정책 즉 백성들의 크리스마스 축하를 막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레스태드 교수의 <미국의 소리> 대담에 따르면 독립전쟁이 끝난 뒤 미국인들은 영국 왕이 정해놓은 명절을 모두 폐지했다. 하지만 명절을 즐기고 싶은 열망이 미국인들 마음에 가득했고, 크리스마스를 명절로 지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리하여 남북전쟁이 끝난 지 5년 뒤인 1870년, 율리시즈 그랜트 대통령은 국민화합을 위하여 크리스마스를 연방 공휴일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백성을 이기는 종교도 정부도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크리스마스가 공휴일로 지정된 후 한동안은 은행 문을 닫고 공무원들이 하루 쉰다는 의미 밖에는 없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집안에 나무를 들여와 장식을 하고 선물을 매다는 등 트리를 꾸미는 풍습이 도시를 중심으로 퍼지게 됐다고 레스태드 교수는 말한다. 일설에 의하면 크리스마스 트리는 종교개혁가 M.루터가 말한 “인간은 볼품없는 전나무와 같다. 그러나 빛을 받으면 아름답게 빛난다”라는 언급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독일과 미국의 이 전통은 한국으로 넘어와 도시 곳곳에서 밤낮으로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다. 종교적 차원을 넘어 하나의 연말 문화현상으로서 발전했다. 1920~1930년대에는 코카콜라 회사 홍보에 힘입어 산타클로스의 옷은 빨강색으로 고정된다. 판매부진으로 어려움에 처했던 코카콜라는 산타클로스 마케팅으로 재기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가 선물과 물질에 치중하면서 의미가 퇴색했다는 비판도 있으나, 이 축일은 긴 역사 속에서 백성의 뜻과 현실을 고려하면서 가족명절로 발전되어 왔고 부단히 재창조되어 나갈 것이다. 한규만 울산대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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