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끝) 다시 시작, 울산국제영화제!

▲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공연예술학부 겸임교수

울산, 예술문화 소비보다 유흥 발달
인적자원 등 영화제 인프라 부족
영화제 성공 개최 사전 준비가 관건
기획 미흡땐 예산초과·낭비 불보듯

영화인 지인들이 울산을 방문하면 울산의 영상산업 인프라의 열악함을, 영상교육이 전무한 것을, 이렇게 훌륭한 촬영지를 보유한 곳이 어떻게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았는지, 이렇게 큰 도시에 어떻게 영화 전문 인력이 없는지를 의아해 한다.

손님이 오면 두 곳에 꼭 데리고 간다. 국보 반구대 암각화 근처에서 민물생선 매운탕을 먹고,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간절곶에서 자연산 회를 먹은 뒤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온산공단 야경을 내 앞마당인 양 자랑한다. 그리고 삼산동에 가면 반드시 모두가 놀란다. “노래주점과 나이트클럽이 왜 이렇게 많아요?” 놀랍게도 간판은 대부분 비슷하고, 번쩍이는 메커니즘도 창의력 없이 똑같다.

‘즐길거리’가 적기 때문이다. 유흥과 예술문화의 소비는 소모와 향유의 차이가 있다. 유흥이 대체로 시간, 돈, 체력을 소모하는 것이라면 문화소비는 시간, 돈, 가치를 축적해가는 것이다. 울산은 공업·산업도시로 발전해오며 감성·정서적인 면에서 문화소비보다 유흥이 더 많이 발달했다. 업무로 고단한 노동자들에게 문화소비보다 유흥이 상대적으로 더 쉬운 소비형태기 때문이다.

울산에서 예술문화에 대한 필요성·중요성이 오랫동안 논의돼 왔지만 울산국제영화제 개최에 대한 가치 인식과 실천 동력은 미비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시의 의지와 시민의 요구를 확인했다는 점, 성급한 시의 추진력에 시민의 능동적인 참여가 관철되어 시기를 조정했다는 점, 관련 예산이 전면 삭감됐다가 적극적인 시민의 요구에 따라 부활했다는 점에서 울산의 영상예술문화 가능성이 보인다.

영화제작 과정은 크게 사전작업, 제작, 사후작업으로 구분한다.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여 완성하는 것으로 상영은 대략 1개월, 촬영은 통상 4개월이 소요되지만 기획, 시나리오, 헌팅, 콘티, 캐스팅, 리허설 등 촬영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야 하는 사전작업은 확정할 수 없어 평균이 없다. 영상산업이 발전해 오면서 사전작업 기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업무는 원자 단위까지 세분화되고 있다. 전체 과정에서 가장 적은 인원과 비용으로, 준비하고 검토한 품만큼 훨씬 많은 예산이 사용되는 제작 및 사후작업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소홀히 한 경우 좋은 작품은 기대하기 어렵고, 그 감독이나 프로듀서에게는 대체로 두 번의 기회가 오지 않는다.

영화제 기획과 매뉴얼 수립 기간이 영화제작의 사전작업이라면 영화제 실행을 위한 준비 기간은 제작, 영화제 개최 준비 완료는 사후작업, 영화제 개최는 완성된 영화의 상영과 같다. 영화제 역시 최소의 인력과 비용으로 준비할 수 있는 기획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1년 만에 끝날 수도 있고 2년 또는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성과에만 급급해서 이 단계를 뛰어넘거나 소홀히 한다면 영화제 개최에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을 꾀한다면 그야말로 예산낭비요 기만이다.

최근 삭감될 줄 알았던 내년 울산국제영화제 준비예산(7억원)이 부활하면서 시스템을 만들고 외부 전문 인력을 공개 수급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을 환영한다. 영화제의 이해 당사자는 지방정부, 지역시민, 영화인이고, 큰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궁극적으로 영화제가 지역에 기여할 바를 다방면에서 고려해야 한다. 시작은 외부의 힘을 빌더라도 교육을 통해 지역 인력을 양성해서 독립해나가면 된다. 대부분 눈부신 한국의 산업체계가 그렇게 발전되어 왔지 않은가. 빛나던 전주국제영화제가 20주년을 성대하게 치른 뒤 외부 영화 인력과 지역민 간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해 구설수에 오르고 지역과 영화계에 심려를 끼친 점을 반면교사 해야 한다. 기획단계를 소홀히 하고 시민을 교육하지 않았을 때 울산도 그런 갈등을 내재하게 될 것이다.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공연예술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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