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배 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울산시민은 산업수도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공해도시라는 오명과 ‘문화 불모지’라는 말에 자괴감을 느껴왔다. 생태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그간의 노력으로 태화강이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었지만 문화 관련해서는 여전히 자랑할 게 별로 없다고들 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여전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화에 대한 인식도 한몫을 하고 있어 보인다. 다수의 일반시민은 물론이고 문화예술인과 종사자들조차 문화를 ‘문학과 예술’ 정도로 여기는 탓에 ‘문화 빈곤’을 느낀다는 말이다.

지금의 ‘문화도시’ 담론은 고급문화의 대중적 확산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문화 개념의 범위와 수준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창조적이고 현실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국가발전에서 ‘문화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주장은 제3세계의 성공과 실패를 비교하면서 정치학자 헌팅턴이 내린 결론이다. 여기서 문화란 사회에서 우세한 ‘가치, 태도, 신념, 지향점’을 의미한다.

문화 개념을 일상으로 확장한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개인이 가정과 사회로부터 체득한 사고방식, 감정표현방식, 언어표현, 취미 등의 ‘차이’가 계급구조와 ‘문화자본’을 형성하는 과정을 설명한 바 있다. 이후 이러한 문화 이해는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2015년 유엔총회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로드맵으로 ‘2030 아젠다’를 채택했는데, 각별히 목표 11.4에서 ‘세계의 문화적 자연적 유산의 보존과 보호 노력의 강화’를 적시했다. 문화가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의 ‘중요한 동력’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듬해 유네스코는 ‘문화: 도시의 미래’라는 지구적 차원의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문화가 도시의 재생과 혁신의 핵심이며 보다 포용적이고 창조적이며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의 ‘전략적 자산’임을 강조했다.

말하자면 ‘문화도시’ 담론은 기존의 도시발전모델의 한계를 성찰하고 문화야말로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의 힘임을 인정한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한국정부와 지자체들도 이러한 세계적 추이에 맞추어 ‘문화도시’ 조성을 실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염두에 두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짚어 본다. 첫째, 유형 및 무형의 문화적 유산과 자연적 유산을 보존하고 보호해야 한다. 파괴와 재건 접근방식에서 탈피해 휴먼 스케일과 복합용 건축, 도시재생사업, 도시와 농촌의 호혜적 연계, 문화와 도시환경의 조화, 다양한 규모와 종류의 문화 장소의 확보와 접근성 보장 등 ‘창조 도시’와 ‘스마트 시티’ 기획에서 문화와 자연 유산이 중심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 중심 문화예술의 창작이 고무되고 문화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문화예술 저변 확대와 창작의 중요한 전제는 시민의 공감과 참여이다. 이주민과 원주민, 남성과 여성, 노인과 젊은이는 물론이고 다양한 계층의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이 존중돼야 문화예술의 확장과 창조적 ‘스타트업’이 가능하다. 다양한 문화적 네트워크 구축은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품격 있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할 것이다.

셋째, 지방정부의 정책수립은 참여적 통합적 방식이어야 한다. 민관 거번너스는 참여자들 사이의 헌신, 협업, 조율을 요구한다. 정책 개선을 위해 문화적 영향의 지표와 자료수집 체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문화전용 재원조달을 위해 기부금, 후원금, 세금인센티브, 소액대출과 신용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문화도시’는 성격상 실험적이며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 도시마다 특성을 살려 창조적 모델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다. 울산도 예외가 아니다. 김정배 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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