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시사 논쟁으로 인해
사교 모임 퇴색되는 경우 많아
연말 술자리 대화의 기술 절실

▲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12월은 술이 흔한 달이다. 그다지 사교적이지 않은 사람도 12월에는 여러 번의 회식으로 몸이 바쁘다. 그 회식의 대부분은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기 일쑤다. 오랜만에 모이는 자리에서 술로 분위기를 돋우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시작한 술에 격한 말들이 더해지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난다. 특히 그 말이 정치나 종교에 관한 것일 경우에는 어색한 분위기를 넘어서 사람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흔히 사교적인 모임에서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한 개인의 판단이 서로 다르고 그 차이가 토론이나 대화로 해소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 정도의 문제점은 알고 있어서 친한 지인들과의 모임일지라도 종교와 정치를 대화의 주제로 사용하는 것을 피한다. 그러나 이 주제가 구체적인 현실문제와 섞이면 양상이 달라진다. TV에서 연일 보도되고 있는 사실에 대한 평가는 누구나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술자리의 편리한 화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대화에서는 개인적인 의견을 객관적인 사실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사건을 마치 사회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일반화하거나 개인적인 일탈을 그가 속한 집단의 가치관으로 확대해석하는 경우가 흔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술자리의 편안한 대화에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판단을 정치적인 신념이나 종교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하지 않고 절제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 술이 더해지면 주장과 비판이 필요이상으로 과격하고 신랄한 언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최근 참가한 몇 차례의 술자리에서도 어김없이 이런 이야기가 세상의 복잡한 사건과 엮여서 토론의 주제로 등장했다. 전직 법무부 장관의 이름과 더불어 시작되기 마련인 이 대화는 소주 두세 잔을 마시는 동안에는 그런대로 논리적인 성찰을 유지하면서 비판을 가한다. 그리고 다른 참석자들도 대부분 동조하면서 말을 거들게 된다. 혹 동조하지 않더라도 웃으면서 흘려버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취기가 더해지면 비판이 조롱과 탄식으로 변하게 된다. 이 때부터 비난의 언어는 강도를 더해간다. 한 개인에 대한 비판이 결국은 정파나 정치세력에 대한 비난으로 연결되고 만다. 또 구체적인 사건이나 정책의 옳고 그름보다는 누가 마음에 들고 들지 않느냐 하는 심리적 취향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상대방의 판단에 비약이 있다고 감히 말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순진한 행동이기 쉽다. 이런 자리에서 상대방의 주장에 맞서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판단을 표현하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거니와 자신의 언어가 자신의 의도대로 전달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경험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자리의 대화 속에서 정치적인 주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고 또 그 대화에 참여하게 되는 자신을 보면서 대화의 기술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은 반성을 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의견이 논리적 근거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도 구체적인 사실을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논리는 많은 경우에 진실을 찾아가는 방편으로 사용되기 보다는 자신의 신념이나 감정을 합리화하거나 포장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정치와 같이 우리의 일상과 거리가 먼 영역일 경우에는 그 주장을 위해서 동원되는 다양한 논리에 포함된 함정을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말의 진정한 용도는 우리의 욕구를 표현하기 보다는 숨기기 위한 것이라는 언어학자의 주장을 자신 있게 부정하지 못한다. 더구나 술자리의 언어로 세상의 복잡한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비판한다는 것은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일 년에 서너 번씩 만나는 친구가 해가 가기 전에 한번 보자고 전화가 왔다. 그러자고 하면서도 아직 약속을 잡지 못하고 있다. 시사문제에 대한 대화를 즐기는 그 친구의 성향을 잘 아는 탓에 이번에도 만나면 무슨 이야기가 나올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두세 시간 동안 지속될 그 친구의 언어를 견디지 못할 것 같아 연말의 만남을 미루고 있다.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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