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주은 전 울산과학대 교수·국문학

우리는 역사적으로 선진문화의 영향이 있었고, 그 선진문화는 우리 문화에 융합되어 문화 발달의 원동력 역할을 했다. 19세기 근·현대에도 선진문화의 유입이 있었는데 서양문물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서양이 공존하고 있다. 하나는 일본이 번안한 서양이고, 하나는 우리가 번안한 서양이다. 여기에서 번안은 원작의 내용이나 줄거리는 그대로 두고 풍속, 인명, 지명 따위를 시대나 풍토에 맞게 바꾸어 고친 것이다. 소설, 영화뿐만 아니라 언어, 기술, 교육, 음식 등 일상생활에서 번안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백욱인은 <번안사회>에서 서양의 번안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 일본에서 번안한 서양문물이 우리 문화에 미친 현상을 소개한다. 일본은 서양문물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서양어와 적절하게 대응하는 일본어를 적극적으로 찾고, 도저히 대응어가 없으면 기존의 한자어를 중심으로 조합했으며, 그래도 해결하지 못하면 신조어를 만들었다. 일제시대 일본이 번안한 어휘 중에 대표적인 것이 ‘양’자가 붙어있는 단어이다. 양복, 양품, 양서 등이다. 우리는 일본이 번안한 서양문물을 실제 서양문물이라고 알았다. 이점을 주목하는 이유는 일제를 매개로 서구 열강의 세계관과 제도가 우리에게 이식되었다는 점이다. <번안사회>에서는 우리에게 이식된 일본의 번안 문화는 신속하게 우리 문화를 파괴하면서 새롭게 형성했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적극적으로 서양 문헌을 번역하여 자국민에게 보급했다. 일본인은 한자의 음과 뜻을 최대한 활용하여 번역했으나, 이 번역된 내용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 개념어에 합치하는 등가적 한글을 생산하지 못하고 일본인의 번역을 전적으로 수용한 면이 있었다. 이런 이중 번역과정에서 우리말은 구어와 문어의 틈이 벌어지고, 언문일치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한다. 책의 내용을 보면, ‘성경과 찬송가’ 번역과정, 그리고 일본의 ‘교육칙어’와 ‘국민교육헌장’을 비교하고 있다. 이외에도 경양식 음식은 서양의 음식이 일본을 거치면서 번안된 음식이라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건빵’ ‘고무신’ ‘맥고모자’ ‘만화’ 등도 번안문화에 해당한다. 여기서 번안사회의 문물을 강조하는 것은 그 언어의 도입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우리 언어 발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윤주은 전 울산과학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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