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돌아보니 소소한 것들의 연속
일희일비 말고 묵묵히 내길 걸어가야
새해엔 소소한 것에 더욱 정성 다하길

▲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

‘…감사를 잊고 살진 않았나요?/ 한 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 저녁놀을 바라보는 겸허함으로/ 오늘을 더 깊이 눈감게 해 주십시오/ 더 밝게 눈 뜨기 위해’

(‘한 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중/ 이해인)

한 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 서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자연의 섭리를 잠시 생각해본다. 잎이 떨어지는 것은 나무의 생존전략이란다. 겨울이 돌아오면 잎과 잎자루 사이에 떨켜층(조직이 딱딱하게 굳는 현상)을 만들어 잎과 줄기로 지나는 수분의 통로를 차단한다. 고통의 대가는 우리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낙엽이다. 잎새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고 나무가 죽은 것이 아니다. 성장을 위한 인내의 과정이다. 돌아보면 올해도 감사할 일들이 즐비했을진대, 직접 보지 못했다고 그냥 지나친 소소한 것들이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어머님이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지 수년이 지나니 최근 급격히 증세가 나빠지셨다. 예전 기억이 하나 둘 사라지시나 보다. 얼마 안 되지만, 아끼며 애써 모았던 당신 통장의 존재조차도 하얗게 잊으셨다. 한때 매우 소중하다고 여겼던 것조차 언젠가 아무 의미가 없어질 때가 있다. 식어가는 화롯가의 그 마지막 온기처럼 저려오는 생명력에 그저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잘 생긴 브래드 피트가 멋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You are a good friend”라고 치켜세우니까 “I will try!”라고 대답한다. 이 짧은 대답이 잠잠하게 내 가슴에 와 닿았다. “Thank you”가 아닌 “노력할게”였다. 이런 친구 한 명이라도 곁에 있다면 참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

한 해를 돌아보니 이런 소소한 것들이 참 많았다. 연초에 꿈꾸었던 일들이 현실이 되기도 하고 계획이 변경되기도 하지만, 우리 일상은 소소함의 연속이다. 사관생도였던 그때도, 공무원인 지금도, 퇴직하는 내년에도 그럴 것이다. 그때는 대단하게 여겼던 것들도 돌아보니 결국 소소한 것들이었다. 소소했던 이런 것조차 먼 훗날엔 그리움의 대상이요, 살아있기에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축복이며, 매일매일이 그저 기적이었음을 알게 되리라.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자. 목표까지 남은 거리를 가리키는 이정표(milestone)의 화살표처럼 여여하게 주어진 내 길을 걸어가자.

정호승 시인이 “일곱 개 토성의 고리 너머 머나먼 곳에 보이는 볼펜 똥 같은 크기의 지구 사진을 보노라면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하고 느낄 때가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때론 밴댕이 소갈딱지 같지만 우주보다 더 깊고 또 넓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 아닌가. 대관소찰(大觀小察), 크게 보면서 소소함에도 충실하자. 사소한 언행과 감사 인사, 작은 관심과 배려가 우리 인생도 바꿀 수 있다. 가끔은 이런 소소한 것들로 우리는 쉽게 마음을 다치거나 아파하지만, 또 이로 인해 위로를 받기도 한다. 소중한 감정을 무리하게 낭비하지 말고, 매 순간을 즐겁게 받아들이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비록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소소한 성취의 기쁨과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내게 선물로 돌아올지 모른다.

새해에는 이렇게 위대하지는 않아도 소소한 것들에 더 정성을 다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나무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고통과 함께 더 성장하고, 언젠가 잊히더라도 소중한 추억거리를 가까운 이들과 더 많이 나누고, 항상 노력하는 멋진 친구와 동행한다면 참 좋겠다. “적게 가지고도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소소한 희망과 함께 이번 새해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싶다.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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