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영화제·열린시민대학·백리대숲
토론회·공론화 뒤늦게 진행 무의미
시정을 지키는 힘은 ‘뿌리 깊은 여론’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울산 사회에 여론이 실종됐다. 일방적인 주장만 있다. 공청회, 위원회, 보고회 등이 수시로 열리고는 있으나 누구도 쉽사리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하나의 주장은 곧 정책이 된다. 비판 세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정사안에 대한 사회단체들의 반론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또한 일방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시민사회가 정의를 도출하는 최선의 방법이 갑론을박임을 모르지 않으면서, 토론이나 공론화 과정 없이 내부의 의견을 그대로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에 배포한다. 보도자료 속에 날선 용어가 등장하지만 따끔하기 보다 공허하다. 시민사회의 비판이 정책을 바꾸지도, 새로운 여론을 만들지도 못하는 이유다.

국제영화제가 울산의 대표축제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은 송철호 시장의 공약 때문이다. 국제영화제 개최를 위한 전문가 회의가 있었으나 첫 모임에서도 개최여부에 대한 의견을 묻지는 않았다. 이미 개최를 전제로 하면서 부산국제영화제나 울주산악영화제와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모색에 관심을 두는 회의였다. 시민단체도 기자회견을 통해 반대의견을 내긴 했지만 널리 여론화하지 못한 탓인지 내년 예산 7억원이 편성됐다. 시민여론과 상관없이 어떤 형태든 국제영화제를 시작하겠다는 고집이다.

울산시의회의 예산심의에서 논란이 됐다가 예결위에서 부활한 예산 중 또다른 한가지가 열린시민대학이다. 열린시민대학은 미국의 미네르바 아카데미와 프랑스의 에콜 21을 벤치마킹한 대학을 만들어 4차산업에 적절한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송시장의 공약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실현가능성에 의구심이 일긴 해도 새로운 개념의 교육에 대한 기대감이 없진 않았으나 내년 예산편성안에 들어 있는 열린시민대학의 계획안을 보면 4차산업 인재양성과는 사뭇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 또한 시범운영에 앞서 전문가·시민설명회라는 형식을 거쳤다. 하지만 이미 출범을 전제로한 설명회였기에 전문가들도 다른 의견을 개진할 수가 없었다면서 어이없어했다.

국제영화제든 열린시민대학이든 다양한 여론을 모으면 더욱 발전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아이템임에 분명하다. 국제영화제는 울산에서도 영상세대들을 위한 새로운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굳이 영화제가 아니라 영상산업 육성의 기반마련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열린시민대학도 시간을 두고 공감대를 형성하면 우리나라에서 유례 없는 새로운 형식의 대학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3無(교수·학비·학위)가 아니라 학비를 내더라도 청년과 베이비부머, 경력단절여성 등 다양한 계층의 새로운 진로개척에 도움이 되는 제대로된 학위과정일 때 비로소 재정을 들일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성급하게 도처에 늘린 또하나의 평생학습기관으로 공약실천에 숫자 하나를 더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백리대숲도 마찬가지다. 태화강 백리라는 다채로운 자연의 보고를 대숲으로 굳이 일원화해야 할 이유가 무언가. 천차만별 대나무의 생태조차 고려하지 않은 채 마치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내놓은 계획안을 펼쳐놓고 그림같은 상상을 한다고 해서 현실이 될 수는 없다. 백리대숲은 자연생태를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전문가들의 격렬한 토론과 세심한 검증이 필요하다.

‘시민과 함께 다시 뛰는 울산’이라는 슬로건과는 정반대로 울산 최초의 진보 정부는 1년여째 지지율 꼴찌를 못벗어나고 있다. 단언컨대 원인은 여론 실종이다. 아무리 마음이 조급해도 처음부터 토론하고 또 토론해서 여론을 형성하고 시민적 공감대를 형성했어야 했다. ‘하명수사의혹’으로 인해 내년 역대 최대 국비를 확보했음에도 울산시정(市政)이 어떤 길로 갈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회오리로 변할 지도 모르는 돌풍 속에서 울산시정을 지키는 힘도 오로지 뿌리 깊은 여론이다. 몸을 낮추어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건강한 여론은 시정의 정의이자 진실이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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