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미란 울산대 법학과 조교수

어느덧 달력의 마지막 장이다. 비록 크리스마스도 지났지만, 아직 새해가 대엿새나 남아있다.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다가올 새해를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는 듯하여, 기쁜 마음이 든다.

올 한 해, 우리 사회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떠올려 보면, 안타깝게도 좋았던 일보다는 그렇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의 근간에는 계급과 분열, 대립이라는 키워드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주 쉬운 예로, 당장 올 한해 눈길을 끌었던 드라마나 영화를 떠올려 봐도 그러하다. 올해 초,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SKY캐슬이 그러했고, 우리 사회의 현실이 투영된 영화 기생충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러한 작품에 대한 국민의 열광은 계급사회에 대한 동경이나 옹호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계급사회의 모순을 보며 함께 실소한 것이고, 동시에 그러한 모습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으로 지켜본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많은 이가 동경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본 건, 비교적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나온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공동체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가진 것도 없고, 상처투성이의 삶이지만, 그럼에도, 그럴수록 오히려 더 스스로를 밝고 환하게 빛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 자기 상처로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고, 자기의 상처를 바라보듯 타인의 상처를 바라보며, 결국은 타인의 상처도 함께 보듬어 나갈 수 있는 삶,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좇아야 할 것 같은 돈이나 지위, 명예와 같이 만들어진 목표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소중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에 많은 이가 공감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계급을 나누고, 대립과 분열을 조장하는 사회는 바로 서기 어렵고, 오로지 나 혼자만 잘 살겠다는 마음으로는 결코 인생의 행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본인이 신이 아닌 한, 스스로가 만들어 낸 계급사회에는 반드시 본인 위에 군림하는 계급이 있을 수밖에 없고, 본인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온통 경쟁자만이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9년을 잘 마무리하고, 2020년을 잘 맞이하는 일을 의외로 쉽고 간단하다. 2019년에 스스로의 마음을 씁쓸하게 했던 것들과 작별하고, 진심으로 공감하고, 스스로를 행복하게 했던 것들만 마음속에 남겨두고 새해를 맞이하면 될 일이다.

이해인 수녀님의 ‘새해에는 동백꽃처럼’이라는 시에는 “모진 추위에도 시들지 않는 희망의 잎사귀를 늘려 당신께 기쁨을 드리겠습니다. 어디선가 날아오는 이름 없는 새들도 가슴에 앉히는 동백꽃처럼 낯선 이웃을 거절하지 않고 사랑을 베풀겠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지난 2019년, 진심으로 원했던 것이 우리 사회의 분열이나 대립이 아니라, 공존과 공생, 그리고 행복이었다면, 올 한해 쌓인 마음속의 찌꺼기는 훌훌 털어내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동백꽃 같은 마음 한송이를 피워볼 수 있기를 바란다. 배미란 울산대 법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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