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규홍 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2019년 기해년도 얼마남지 않았다. 황금돼지띠 해라고 야단을 쳤던 해였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은 더 빨리 지나간다더니 실감이 난다. 뒤돌아보면 무엇을 했는지 기억도 가물하지만 그래도 큰탈 없이 지금 이 자리에 당당히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설령 뒤돌아보기 싫어도 한번 쯤은 뒤돌아보고 나의 자리를 챙겨보는 일은 의미있는 일이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이런 뜻에서 요즘 들어 부쩍 자서전 쓰기 바람이 일고 있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고 바람직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서전 쓰기 책이 여럿 나오고 곳곳에서 자서전 쓰기 강좌도 보인다. 필자도 시립도서관으로부터 자서전 쓰기 강의 요청이 왔다. 내 전공이 아니라서 사양을 했지만 수강생이 60~70대 분들이니 나이가 좀 든 교수가 좋겠다고 했다. 한편으로 이참에 자서전에 대한 공부도 하고 나도 한번 쓸까 하는 생각에 4주 동안 강의를 하게 되었다. 먼저 자서전을 왜 쓰려고 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를 깊이 생각했다. 우리 모두 이 세상에 태어나 수 십년 간 수많은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으로 얽히고 설키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한 인간의 삶은 그 사람 이외 그 누구도 경험할 수도 없는 오직 유일무이한 삶이다. 뿐만 아니라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한 인간의 삶이라는 거다. 그래서 한 인간은 절대적으로 존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자서전은 한 사람의 유일무이한 삶의 가치를 뒤돌아보고 남기는 작업이다. 그래서 충분히 나름 가치가 있는 일이다. 지난 과거의 삶에 대한 성찰이고 다가오는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을 찾는 일이다. 이 땅에 와서 살아온 지난 일을 뒤돌아보고 정리하는 기회고 지금 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계획하는 일이다. 가슴이 찢어지고 고통받았던 지난 일들을 눈물로 쏟아내면서 그 한을 풀어내는 작업이고 행복했던 일들을 기쁨의 회한으로 추억하는 작업이다. 여태 화해하지 못한 인연들을 불러내어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작업이고 억울함과 업장을 소멸하는 수행의 작업이다.

이 땅에 와 살면서 후회되고 잘못된 수많은 일들, 아니면 어려운 고통과 힘든 삶을 극복한 일들을 써냄으로써 다른 이들이 그대로 겪지 않도록하는 인생 교훈서가 되고 지침서가 바로 자서전이다. 자서전은 유명한 사람만의 전유물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 평범한 범부들의 삶이 더 가치롭고 가슴을 울린다. 우리들의 삶이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서전은 열심히 살아온 나의 삶,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의 역정과 모습을 후손들에게 남기는 유산의 작업이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굽이굽이마다 넘어온 힘든 삶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스스로 삶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깨닫고 감동의 정서를 풍부히 하게 된다. 자서전을 쓰는 일은 지난 슬픔과 힘듦을 불러내어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고 지금 현재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롭고 존중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모두 가치가 있다.

자기가 살아온 지난 일들을 손자에게 이야기하듯, 친구에게 넋두리하듯 적으면 그것이 곧 자서전이 된다. 가족 이야기를 하고, 자기가 살아온 환경을 이야기하고, 어린 시절 추억들 학창 시절 기억에 남는 추억들 취업하고, 결혼하면서 살았던 부부의 애환들, 자녀들의 성장과 교육과 출가의 과정들 앞으로 남은 삶 동안 하고 싶은 일들, 살아갈 계획들도 모두 귀중한 자서전에 남길 만하다. 빛바랜 지나간 사진들도 불러오면 더 좋겠다.

좌우명으로 시작하여 묘지명 유언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할일이 없을 때, 아침에 일어나 하루 한 장씩이라도 과거를 돌아보는 글을 썼으면 좋겠다. 꾸준히 조금씩 조금씩 써놓으면 그것이 모여 한 편의 역사가 되고 책이 된다. 잘 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쓰는 것이다. 독일 역사학자 빌헬름 딜타이는 “자서전은 삶의 이해를 돕는 가장 알기 쉬운, 최상의 형식”이라고 했다. 이 세상에 오로지 한 개 뿐인 책이 된다. 언젠가 나도 나의 삶을 적어 보고 싶다. 망설이면 기회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임규홍 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