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풍자 소설 걸리버의 이상한 나라
오늘날 우리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모순의 악순환 속에도 전진의 역사를

▲ 황연순 춘해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아주 어렸을 때 <걸리버 여행기>를 그림책으로 읽었다. 엄청난 또 다른 세계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아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며 한편으로 무섭기까지 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이 남아있다. 성장 후 <걸리버 여행기>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천진난만했던 시절 읽었던 동화가 아니었다.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1726년 정치 권력층의 부패, 탐욕, 위선을 야유하며 풍자하고 있었다. 신학 학위를 받은 신부로, 정치가로, 작가로 활동했던 그는 특히 이 책을 통해 영국의 부패한 정치 현실과 법조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황에도 적용된다.

걸리버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외과의사 밑에서 조수를 하다가 오랜 항해에는 의술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의학을 공부하고 외과의사로서 항해를 하다가 난파를 당해 키가 15㎝ 정도 되는 사람들이 사는 초미니 제국 릴리퍼트에 들어가게 된다. 궁중에서 왕의 신임을 얻기 위해 줄타기 게임을 하고 가장 높이 뛰어 오르고도 줄에서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고위직을 차지하는 놀이를 본다. 이는 타아, 자아 모두가 본질적인 능력에 관심 없는 우스꽝스러운 인간으로 가득찬 영국의 왕궁과 정치를 풍자한 것으로 인간의 도덕적, 정신적 왜소함을 고발한 것이다. 제래미 리프킨이 말한 잉여인간과 같은 존재들이 각양각색의 삐에로와 같은 모습으로 자신만의 유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희화한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과 18세기 초의 영국이 크게 다를 바 없다.

두 번째 항해를 하다 또 폭풍우를 만나 거인족의 나라 브롭딩나그에 들어가게 된다. 추한 인간 군상의 결함을 마치 확대경으로 본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에 무지한 왕과 국민들을 만났고 왕에게 100년 동안 일어난 영국의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며 역사란 탐욕, 파벌, 위선, 배신, 잔인함, 격분, 광기, 증오, 시기, 욕정, 악의 또는 야망에서 나온 비열하고 저열한 짓이라고 알려준다. 정치인의 몰염치도 문제지만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국민을 위하지 않고 자기 정치를 하거나, 정치인이 아니면서 마치 정치인처럼 행동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은 전혀 안중에 없는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하며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는 뻔한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세 번째 항해에서는 해적을 만나 하늘을 나는 이상한 섬 라푸타에 상륙한다. 여기서는 지식인을 풍자했다. 이웃과 주변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추상과 내면의 세계에만 빠져 있는 과학도들을 보게 된다. 그 곳을 떠나 발니바르비에 가서 각 나라의 언어를 몰라도 인위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놀라운 프로젝트를 수행한 교수들을 보게 된다. 과학만능주의에 빠진 지식인과 진심이 담기지 않은 대화를 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렬하게 비웃는다. 또 걸리버는 마법사들의 섬에 가서 죽은 인물들을 불러내는 능력을 가진 총독을 만나 역사 속의 인물들을 불러낸다. 알고 보니 진짜로 공적을 세운 사람들의 대부분은 빈곤과 굴욕 속에서 죽은 것을 알게 된다. 역시 오늘날 대한민국의 역사와 사회의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가난한 삶을 살고 있고, 권력을 좇아다닌 사람들은 더 호화롭고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런 현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날아다니는 이상한 섬인 것이다.

네 번째는 이성을 가진 말(馬)의 족속이 지배하는 나라 후이님에 가게 된다. 그 곳에서 인간을 닮은 존재인 야만 상태의 야후와 이성적인 야후를 보게 된다. 특히 자연 상태의 인간도 아니고 종교의 힘으로 개화된 인간도 아니며 자기 지성과 본능을 스스로 노예화시켜서 타락한 인간, 무엇이든 독점하려고 하는 졸렬한 인간 군상을 고발한다. 작가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 아니라 이성적일 수 있는 동물로 보았다.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조너선 스위프트와 같이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이중적 세상에서 양심의 목소리를 낸 것처럼, 우리도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영원히 내리지는 않는 것처럼, 인정받지 못해도 모두가 아는 진실이 있음을 아는 것처럼, 모순의 굴레가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사필귀정(事必歸正)을 기억하며 더디겠지만 한걸음씩 내딛어 제법 괜찮은 이 땅을 만들어야 한다. 황연순 춘해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