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가지고 오는 인형마다 사연 없는 인형이 없어요.
인형을 수선하는 게 아니라 한 땀 한 땀으로 추억을 치료한다 …
할머니는 강아지 인형의 털 빠진 등에 비슷한 천을 덧대 꿰맵니다.
강아지 인형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던 중년 부인은 아이처럼 소리치며 좋아합니다.

햇살이 공방 깊숙하게 늘어진 가을 오후입니다. 등유 난로에 올려놓은 주전자가 김을 뿜어냅니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여자아이인형을 잡고 씨름하고 있습니다. 돋보기안경이 코끝에 걸려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인형의 얼굴에 표정을 바느질 합니다. 한 땀 한 땀에 손톱달 눈썹과 한껏 올라간 입꼬리가 생겨납니다. 진열장의 인형들은 할머니의 손놀림에 저절로 고개가 따라갑니다.

할머니는 검지에서 골무를 뺍니다. 빨간 공단으로 직접 만든 골무입니다. 골무의 가운데에는 코바늘로 짠 노란 꽃이 꿰매져있습니다. 짱짱했던 노란 꽃은 이제 푸슬푸슬 합니다. 할머니는 손가락을 가만히 주무릅니다.

여자아이 인형을 진열장에 올려놓습니다.

“곰돌아, 네 옆자리에 이쁜이가 왔네.”

새로 덧댄 곰돌이의 배를 쓱 문지르며 말을 겁니다. 곰돌이의 뺨이 붉어집니다.

“어라, 고릴라가 샘이 나는 모양이네. 옜다. 이리로 옮겨 주마.”

아래 칸에 있던 고릴라 인형을 여자아이 인형 옆에 놓습니다.

따르르릉, 할머니의 짧은 여유가 끝납니다.

“네, 이제 막 수술을 끝냈답니다. 6시 전에는 언제든지 찾으러 오셔도 됩니다.”

전화를 끊고 숫자만 커다랗게 인쇄된 달력을 한참 동안 쳐다봅니다.

“내일까지 청년의 곰돌이 인형을 손봐야 하고, 그 아가씨 토끼 인형도 내일 찾으러 온다 했는데….”

혼잣말을 하며 달력에 표시해둔 주문내용이랑 벽면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여놓은 주문서들을 찬찬히 훑어봅니다. 빼곡한 주문서들을 보며 할머니는 또 바늘에 실을 뀁니다.

▲ 일러스트=김천정

“여기가 인형 병원 맞나요?”

한 중년의 부인이 옆구리가 터지고 한 쪽 눈의 실밥이 다 풀린 강아지 인형을 가지고 왔습니다.

“얘야 많이 아프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인형을 받아 든 할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피부 이식도 하고 내장과 눈도 교체해야 합니다.”

할머니는 강아지 인형을 세심하게 살핍니다.

“제가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고 있어요. 지난 달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한국에 나왔지요.”

중년 부인이 마른 침을 삼킵니다.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 물품을 정리하다가 다락방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종이상자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 상자 안에 이 인형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입학할 때 아버지가 제 손 잡고 가서 처음으로 사 주신 인형이에요.”

중년 부인의 목소리가 떨립니다. 할머니가 부인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넵니다.

“여기 가지고 오는 인형마다 사연 없는 인형이 없어요. 단순히 인형을 수선하는 게 아니라 한 땀 한 땀으로 추억을 치료한다, 생각하며 일 한답니다.”

차 한 잔을 받아 든 중년 부인이 공방 안을 찬찬히 둘러봅니다. 수선을 마친 인형들이 진열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하나 같이 마음에 듭니다. 자잘한 꽃무늬 천으로 안쪽을 꼼꼼하게 덧댄 대바구니에는 할머니의 손길을 기다리는 인형들이 가득합니다. 머리카락이 다 빠진 바비 인형, 앞 다리 두 개가 부러진 강아지 인형, 가슴팍의 털이 다 빠진 곰돌이 인형, 커다란 두 귀가 축 쳐진 토끼 인형……. 중년 부인은 벽에 다닥다닥 붙은 주문서들과 수선을 기다리는 인형들을 차례차례 살피다 조심스레 말을 꺼냅니다.

“죄송한데요. 오늘까지 안 될까요? 제가 내일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해서요. 일찍 이곳을 알았다면 좋았을 걸…….”

중년 부인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아이고, 벌써 3신데. 아무리 빨리 해도 서너 시간은 걸릴 텐데. 가을 해는 빨리 저물어서…….”

할머니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어느새 골무를 끼고 수술 준비를 합니다. 가위, 실, 솜 등이 가지런히 놓인 ‘수술실’ 위에 인형을 올리더니 가위로 강아지 인형의 배를 쭉 갈랐습니다. 솜을 한가득 채워 넣고 봉합 합니다. 강아지 인형과 같은 천을 고르느라 천 꾸러미들을 다 풀어헤칩니다. 어둑어둑해진 작업실에 불을 켭니다. 형광등의 불빛이 따뜻하게 공방 안을 비춥니다. 할머니는 강아지 인형의 털 빠진 등에 비슷한 천을 덧대 꿰맵니다. 마지막으로 강아지 인형의 눈에 수를 놓습니다.

벽시계가 7시를 알립니다. 대수술 끝에 강아지 인형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옆에 바짝 앉아 수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던 중년 부인은 아이처럼 소리치며 좋아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인형을 보며 아버지를 떠올리겠습니다.”

중년 부인은 몇 번이나 허리를 숙였고 할머니는 돋보기안경을 벗고 골무를 벗은 검지를 가만히 만집니다.

“문 닫을 시간이 훌쩍 지났네요. 인형을 잡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니…….”

할머니는 실밥이 잔뜩 묻은 앞치마를 벗습니다.

“건강 잘 챙기셔서 오래 오래 하셔야죠.”

중년 부인은 할머니의 손을 꼬옥 잡습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손님들을 좀 더 오래 만나려면 건강해야 할 것 같아서 바느질 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지키려 하는데 잘 안 되네요.”

할머니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허리에 받친 채 꾸부정한 허리를 천천히 폅니다.

“오늘 저 때문에 무리하셔서 어떡해요?”

할머니는 소리 없이 웃고 중년 부인은 할머니의 손을 다시 한 번 더 맞잡습니다.

할머니는 서둘러 공방을 정리합니다. 풀어놓은 천 꾸러미들을 돌돌 말아 세웁니다. 바늘을 잔뜩 꽂은 바늘꽂이는 고슴도치 같습니다. 밋밋한 공방 바닥에 무늬를 만들고 있던 천조각들을 쓸어 모읍니다. ‘수술대’라 불리는 작업대 위에 솜뭉치며 실밥들이 어지럽게 늘려 있습니다. 할머니는 천천히 주워 담습니다.

문이 벌컥 열립니다. 쌀쌀한 바람이 사람보다 먼저 공방 안으로 밀고 들어옵니다.

“할머니, 아직 계셨네요. 퇴근하다 보니 불이 켜져 있길래 차를 돌렸습니다.”

엄마의 옷자락 뒤에서 여자 아이가 고개만 빼곡 내민 채 공방 안을 살핍니다.

“몇 살?”

할머니가 묻자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이고는 쑥스러운 듯 엄마 옷자락 뒤에 다시 숨습니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거립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나를 보자마자 인형 얘기부터 하면서 징징대길래 오늘밤은 또 어쩌나, 했어요.”

아이 엄마는 할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찾았다! 봄이.”

여자 아이는 엄마의 옷자락을 놓고 팔짝팔짝 뛰며 인형을 가리킵니다. 할머니는 아이에게 인형을 건넵니다.

“와, 봄이 냄새. 진짜 말짱해졌네.”

인형을 받아 든 여자 아이가 팔짝팔짝 뛰며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일 때문에 아이를 친정에 떼놓았거든요. 아이가 인형에 집착을 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어서…….”

엄마의 목소리가 떨립니다. 할머니가 티슈를 건네며 엄마의 등을 토닥입니다.

“봄이라는 이름은 우리 아이 배냇이름이었어요. 친정에 맡기면서 딸려 보낸 인형이 봄이예요. 우리 아이 애착 인형이지요. 수선을 맡긴 후 밤마다 잠을 뒤척였어요. 잠들 땐 아직도 저 인형이 있어야 해요.”

아이 엄마는 눈가를 훔치며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합니다. 아이는 인형을 안고 나갑니다. 차 앞까지 간 아이가 다시 쪼르르 달려오더니 온몸으로 가게 문을 밀고 들어옵니다. 할머니를 한 번 안아주고는 손을 흔들고 나갑니다.

할머니는 엄마와 아이가 차를 타고 떠날 때까지 창밖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이가 좋아한 만큼 여운도 오래 남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빗자루를 들고 하루를 쓸어 담습니다. 할머니는 색색깔의 골무와 실, 고슴도치 바늘꽂이, 돋보기안경을 작업대 위에 가지런히 놓습니다.

“많이 서운하지? 이쁜이, 아니 봄이가 정 들자마자 가버려서.”

할머니는 곰돌이랑 고릴라를 오래오래 쓰다듬습니다. 할머니는 진열장에 놓인 인형들도 차례차례 매만지고 다시 놓아둡니다.

“힘들지? 빨리 고쳐줄게. 조금만 참아.”

수선을 기다리는 인형들도 하나하나 어루만집니다. 할머니는 등유 난로를 끕니다. 매캐한 기름내가 공방 안에 훅 퍼집니다.

“할미 간다. 내일 아침 일찍 올게.”

할머니는 다시 한 번 인형들을 둘러본 후 형광등을 끕니다. 진열장에 놓인 인형들의 시선이 일제히 할머니를 따라 갑니다. 정리되지 못한 실밥 하나가 할머니의 머리 위에 살포시 얹혀 문을 나섭니다. <끝>

▲ 전은주

당선소감-전은주/ 첫 독자 가족들에 부끄럽지 않은 글 쓰고파
책모임을 하다 전화를 받았다. 낯선 번호라 주저했지만 전날, 택배를 보냈다는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전은주씨…… 네, 택배 기사님. 제가 지금 밖이라 경비실……. 여기 경상일봅니다. ……. 숨이 턱 막혔다. 꿈같은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글쓰기에 늦바람 난 엄마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독립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는 서윤, 서찬, 미안하고 고맙다. 고백하자면 엄마는 너희들의 말과 행동에서 많은 걸 가져다 쓴단다. ‘그럼, 한 턱 쏘세요’ 하겠지. 그래 한 턱 쏠게. 나의 빈틈을 소리 없이 메워 주는, 언제나 내편인 용기씨,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건 다 당신 덕분입니다. 시어머니, 친정부모님, 형제들, 시댁식구들, 사랑이 됐든 애정을 빙자한 질책이 됐든 할 말이 많았을 텐데 참아주어 감사합니다.

내 글의 첫 독자인 가족의 평가가 여전히 제일 무섭다. 직관적이면서도 냉정한 아이들의 평가는 문우들과의 치열한 합평과 일맥상통 할 때가 많다. ‘재밌어’는 ‘재밌어’로 ‘별로야’는 어김없이 ‘별로야’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인정받는 글을 쓰겠다.

감사드릴 분들이 참 많다. 두고두고 갚겠다. 함께 읽고 쓰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더 이 영광을 돌린다. 아, 우리 동네 우체국 아저씨! 해마다 ‘신춘문예 응모작품’이라는 빨간 글씨를 붙인 봉투를 내밀며 민망해 할 때 옅은 미소를 짓고는 무심하게 접수해 주던 그 분께 당선 소식을 꼭 전하고 싶다.

제 글을 세상에 내보내 주신 심사위원님과 경상일보에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약력
-1973년 출생
-2018년 월간문학 동화부문 신인상 수상
-아라 동화창작 회원
-석곡별 독서회 회원

▲ 박상재

심사평-박상재 / 할머니가 한땀 한땀 엮어내 들려주는 수채화 같은 이야기
본심에 올라온 열 편의 동화를 읽었다. 아동들의 생활을 다룬 사실동화가 세 편, 의인화 동화가 세 편, 판타지를 수용한 작품이 세 편, 기타가 한 편이었다.

사실동화에 속하는 작품으로는‘전설의 딱지 여왕’ ‘큰언니가 간다!’ ‘뚜껑 요정’이었다. 세 편 중에서 ‘뚜껑 요정’에 애착이 갔다.

의인화 동화인 ‘라이온킹과 타잔’에는 머릿니 타잔과 개미 라이온킹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디테일한 묘사력에도 불구하고 문학성이 부족하여 선에서 멀어졌다. ‘무지개를 건너는 방법’은 가독성이 있는 작품이지만 결말이 선명하지 못한 게 흠이 되었다. ‘안녕, 내 사랑!’은 식구들과 격리되어 우울증에 걸린 앵무새 구름이와 혼자 사는 할머니와의 따뜻한 교감을 그리고 있다. 앵무새를 찍어 유튜브로 돈을 벌려는 얄팍한 세태를 고발하는 등 알레고리도 있는 작품이었다.

동화의 고갱이는 판타지이다. 그 때문에 판타지를 수용한 작품에 애착을 갖고 읽었다. ‘꼴깍 꼴깍 파티’는 혼자 사는 할머니와 다람쥐, 토끼, 너구리 등 숲속의 동물들의 교감을 그렸다. 동화적인 따뜻한 작품이지만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와 꿈으로 처리된 결말이 튼실하지 못한 게 흠이었다. ‘야옹야옹 바나나 팬케이크’는 워킹맘 엄마를 둔 주인공이 돌보미이모가 된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과 어울리는 판타지이다. 돌보미가 된 고양이가 배고파 떠돌 때 주인공이 도와준 인연의 끈을 살린 점은 좋았으나 결말이 산뜻하지 못한 게 아쉬움이었다. ‘깊은 밤 너구리와 함께’는 핸드폰 게임에 빠진 주인공이 낯선 너구리의 방문을 받고 호박죽을 매개로 판타지 세계를 체험하는 이야기이다. 동화적 발상과 훈훈한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판타지의 개연성과 진실성이 부족하다. 판타지를 도입한 세 작품 모두 잎은 성한데 뿌리가 튼튼하지 못해 시든 작품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주목을 끈 것은 ‘안녕, 내 사랑!’과 ‘추억을 치료합니다’였다. ‘안녕, 내 사랑!’은 알레고리도 담겨있어 철학적 메시지도 강한 작품이지만 구성이 다소 산만하고 핍진성이 부족한 게 옥의 티였다. ‘추억을 치료합니다’는 인형 수선을 하는 할머니가 한땀 한땀 엮어낸 따뜻한 이야기이다. 외국에서 살다 친정아버지의 장례식에 왔던 중년 부인이 아빠가 입학선물로 주었던 추억어린 강아지 인형 수선을 맡기는 장면이나 엄마와 떨어져 생활하는 아이가 할머니가 수선해준 배냇인형을 받고 좋아하는 삽화(揷話)가 겨울 수채화처럼 담담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 작품은 문장이 탄탄하고, 묘사가 깔끔하며, 동화의 본령인 사랑의 정신이 녹아 있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보내며 아쉽게 탈락한 응모자들에게는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약력
-1981년 아동문예 신인상 수상
-198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방정환 문학상 수상
-한국아동문학학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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