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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년 만의 귀환 '울산읍성']건물터 아래 422년간 잠들었던 ‘울산읍성’ 비밀의 문 열렸다(상)울산역사의 흐름 울산읍성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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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02  2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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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상일 부사가 감수한 <학성지>(1749년) 속 ‘울산부지도’. 지도 한가운데 표시된 ‘울산읍성’에는 동문 및 서문과 남문인 강해루가 표기돼 있어 성문 3곳이 확인된다. 하지만 북문지는 지도가 훼손돼 확인할 수 없다.

조선 성종때 북정동~교동~성남동~옥교동에 걸쳐 원 형태로 축성
정유재란때 왜군들이 왜성(학성) 쌓기 위해 돌 빼가며 허물어져
422년 만인 지난해 11월 중구 원도심의 한 건물터 아래서 발견
전체 1.7㎞ 중 10여m 확인…울산읍성 전체 면모 확인 연구 시급
조선 전기 이래 울산 현황 살필 귀중한 자료 보존 논의도 급물살


울산 중구를 울산의 종갓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까운 조선조 역사에서 울산 역사의 흐름은 지금의 중구 원도심을 중심으로 흘러왔다. 동헌에는 중앙에서 파견하는 부사의 거처와 집무공간이 있었다. 그 곁에는 울산을 공식방문하는 손님을 위해 객사도 존재했다. 물론 그 주변으로는 각종 공공기관들이 있었을 것이며, 이에 따라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80년대 말까지 근대화를 겪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울산 정치·행정·경제·문화의 핵심을 이뤘던 곳이다.

지난해 11월 울산 중구의 한 건물터에서 느닷없이 발견된 ‘울산읍성’ 유구는 울산 역사의 큰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냈던 흔적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의 울산 중구 원도심의 모태인 것이다. 그러한 ‘울산읍성’ 실체가 지난 연말 처음으로 육안으로 확인됐다. 문헌상으로만 전해지던 ‘울산읍성’ 실물이 무려 422년만에 우리 곁으로 귀환한 것이다.

   
▲ 지난해 11월 400여년 만에 실체가 확인된 울산읍성 유구. 경상일보 자료사진

책 속 기록을 통해 ‘울산읍성’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았지만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읍성은 각종 연구자료 속에서만 존재하는 시설일 뿐 이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니 정확한 형태나 위치를 짐작조차 하기 어렵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으니 역사의 숨결과 같은 존재 가치는 늘 허상으로만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 울산읍성이 임진왜란으로 인해 실체가 사라진 지 422년 만에, 지난해 11월 원도심의 한 건물터 아래에서 발견됐다. 보존방안 마련을 위한 본격 논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사람들의 섣부른 접근을 막기 위해 문화재청과 울산발전연구원, 그리고 울산 중구는 발굴현장을 다시 흙으로 덮어 놓은 상황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각 지역 ‘읍성’들은 일찍이 발굴과 동시에 역사적 가치는 물론 보존의 시급함과 재조명을 위한 다양한 방법론이 거론되며 문화재 지정의 수순을 밟아왔다. 가장 최신 연구결과인 2004년 자료(울산읍성·한삼건)에 따르면 현재까지 확인된 전국의 읍성은 총 35건이다. 그 중 국가사적은 12곳(1963년 이후), 시도지정기념물은 17곳(1970년 이후), 문화재자료는 6곳(1984년 이후)에 이른다.

울산읍성의 경우 아직 발견 된 지 2개월 여 밖에 지나지 않아 문화재 지정을 위한 논의는 시작되지 않았다. 다만, 지난 수십년 간 울산에서는 울산읍성을 주제로 다양한 학술연구와 문화·관광프로그램이 시행됐지만 실체가 없는 상황에서 대부분 역사적 의미만 부각하는된 데 그쳤다면 뚜렷한 실물 유적을 확인한 이번 발굴작업 이후는 정확한 성곽 위치를 규정하는 후속작업과 실질적인 유구활용 및 보존방안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길이 1.7㎞ 중 불과 10여m 정도만 확인된 터라 이미 지역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읍성의 전체적인 면모를 확인하는 연구가 시급하고 이에따라 발굴가능 작업구간을 사전에 살피고 이를 현 시대에 맞게 활용하는 방안까지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또한 각종 개발행위가 진행될 때마다 혹시라도 땅 밑에 존재할 수 있는 읍성이 파괴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시급하다는 제언이다.

한삼건 전 울산대 교수는 “울산읍성은 울산을 다스리던 울산도호부를 보호했던 성곽으로 현재는 흔적만 남았지만 조선 전기 이래의 울산의 현황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향후 울산 구도심의 복원과 함께 울산의 전통시대를 복원할 수 있는 학술적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동문지에서 북문 방향을 거쳐서 서문지에 이르는 구간은 도시 계획상 녹지로 지정돼 있어서 향후 개발 사업이 있더라도 성벽 자리는 보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울산시 중구는 “유구 발견에 따른 문화재자문회의 의견을 반영, 조사범위를 확대해 정밀조사를 진행한 뒤 쉼터조성방안을 결정할 계획”이라며 “울산읍성 유적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성벽유구와 객사유적을 연계,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울산읍성 추정지로 확인되는 지역에 대해선 개발행위 시 매장문화재의 철저한 조사를 토대로 지하 성벽유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울산읍성=조선시대 성곽으로 울산 중구 관내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 6개 성(城) 중 하나다. 북정동~교동~성남동~옥교동에 걸쳐 둥그스름한 원 형태로 축성됐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따르면 성곽의 둘레는 1.7㎞, 높이는 4.5m였다. 조선 성종(1477)대에 쌓았고 120년간 존속하다 정유재란(1597) 때 왜군들이 왜성(학성)을 쌓기 위해 돌을 가져가면서 허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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