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권 행사에 적극 나선 국민연금
경영관여보다 버핏의 투자관리처럼
연기금 활용은 안전성 최우선 돼야

▲ 서재곤 대형타이어유류(주) 대표이사

직원수 25명, 미국 나스닥 시가총액 4위, 애플을 비롯해 코카콜라, 골드만삭스, 사우스웨스트항공, 아메리칸항공, 제너럴모터스(GM), 웰스파고 은행 등의 주식을 보유한 회사, 2018년 7월부터 9월까지 영업이익 한화 9조2000억원. 전년 같은 기간 보다 14.5% 증가한 실적을 올린 기업 버크셔해서웨이는 워렌 버핏이 경영하는 투자 회사다.

코카콜라 주식의 33%나 보유하고 있지만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경영 간섭이 없을 뿐 아니라 임원을 임명하지도 않는다. 투자한 회사에 배당을 요구하지도 않지만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도 주주들에게 배당을 하지 않는다. 경영자의 회사 운영이 투자 원칙에 벗어나면 보유한 주식을 처분하는 것이 유일한 대응책이다. 그의 투자 원칙 첫 번째는 돈을 잃지 않는 것이고, 원칙 두 번째는 첫 번째 원칙을 잊지 않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행동주의 강성부펀드(KCGI)와 함께 한진 그룹을 압박해서 당기순이익 50% 배당, 송현동 호텔부지 등 매각, 사외이사 증원, 감사위원회 설치 등 명분이 있어 보이는 정책을 밀어 붙여서 한진그룹을 무릎 꿇게 했다. 말 많고 탈 많은 한진그룹을 응징했으니 많은 사람들이 속 시원해 하지만 국민연금은 한진그룹의 경영을 간섭했으니 일정 부분 책임도 져야 한다.

대한항공 노조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주주권행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처럼 회사가 어려워서 증자를 실시하면서 더 많은 주식을 매입하라고 국민연금을 찾아와서 주주의무를 요구하면 무엇으로 대응할 것인가? 그뿐 아니라 이제 국민연금 앞에 줄서는 270여개 국내투자 기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민연금은 투자 원칙과 비슷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확정했다. 그 원칙 안에는 배당을 적게 하거나 지배구조가 취약하다고 판단되면 ‘개입’한다는 것이 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버핏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부자지만 자신의 월급을 연 10만달러로 책정한 뒤 한 번도 인상하지 않았다. 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지나친 급여 지출은 회사가 가진 부의 손실로 보며 미래 수익을 고갈시킨다고 생각한 것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금 전문가가 아니라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한 복지 전문가다. 그는 투자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활동에 대해 “불필요한 경영간섭이 아니라 기업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은 횡령·배임·사익편취 등으로 기업가치가 추락했는데도 개선 의지가 없는 투자기업에 대해 국민연금이 이사 해임, 정관 변경 등을 요구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횡령, 배임, 사익편취에 대한 것이라면 검찰이나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감독기구가 할 일이다. 전 국민의 노후를 책임질 국민연금이 검증이 안 된 행동주의 펀드와 연합하여 투자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상식 밖이다. 선진국의 훌륭한 연기금은 비리기업으로 지목되면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국민연금의 투자 수익률은 1998년부터 2018년까지 연 5.2%이다. 버핏이 투자한 회사를 원숭이처럼 따라 투자해도 연 24%의 수익률을 올린다는 말이 있다. 1962년 버핏이 버크셔웨서웨이 주식을 구입할 때 한 주당 7달러였다. 2017년 1월6일 종가 기준으로 한화로 2억9000만원이다. 버핏에 관한 책을 읽고 버핏이 사는 시골 동네를 여행해보고 그가 경영하는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 참석해서 어린아이의 질문을 받는 버핏의 태도를 한번쯤 본다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투자가인가를 알 수 있다. 국민연금 같은 거대 연기금은 행동주의 펀드처럼 투자할 것이 아니라 워렌 버핏처럼 보수적인 투자 관리를 통해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금 정부가 기업을 간섭할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있다. “재벌개혁 등 정부가 원하는 정책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수단으로 국민연금의 주주권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까운 과거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국민연금이 이해할 수 없는 협조를 한 사실이 있었다.

세상에는 많은 투자의 대가들이 있다. 그러나 수익을 많이 내는 투자대가들을 원칙 없이 흉내 낼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연기금 마다 그 연기금의 성격에 맞는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일을 하는 국민연금 같은 연기금은 첫째도 둘째도 안전성을 추구해야한다. 서재곤 대형타이어유류(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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