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나만 옳다” 독선에 빠져있어
국민 깨어있지 않으면 국가 무너질수도
100일 뒤 총선…주인된 권리 꼭 행사를

▲ 김주홍 울산대학교 교수

아무래도 정치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 같아서, 새해 벽두에 화두를 던져본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또는 ‘인간이 정치를 망치는가, 정치가 인간을 망치고 있는가?’

한국의 현대정치사를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극적인 반전 속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그 무엇이 있었고, 그런가 하면 또 다시 급반전이 계속되는 격동의 파노라마로 가득 차 있다. 얼마 전에 ‘선’(善)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존재가 일순간 ‘악’(惡)으로 급변하기도 하고, 이어서 ‘악’(惡)인 것 같던 존재가 선(善)의 자리에 서기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본성에 관한 고민이 인류지성사에 명멸해 왔지만, 서양의 시민혁명기 정치사상가들에게 그것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고민사항이었다. 그리하여 성선설과 성악설로 대변되는 존 로크와 토마스 홉스 뿐 만 아니라 데이비드 흄, 임마누엘 칸트, 르네 데카르트 등에 이르기까지 그 화두는 철학적으로 지속되었고, 마침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까지도 그 뒤를 이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인간관에 바탕을 두고 헌법도 만들고 정치를 했다고 한다. 이는 전기작가 론 처노(Ron Chernow)의 <알렉산더 해밀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들은 물론 유럽의 전제군주제의 문제점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었지만 대중(군중)의 과도한 열정에 의한 헌정에 대한 도전 등 부정적 결과에 대하여 경계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이 이성적이고 따라서 늘 합리적일 수 있다는 낭만적 인간관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현재의 한국 정치는 모든 정파가 ‘나는 옳다(선하다)’는 도그마에 빠져, 급기야 ‘나만 옳다’는 독선과 아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소위 ‘조국 사태’에서 나타나듯이, 집권세력에서는 ‘조국이 아무 죄도 없는데 너무 과도한 수사로 죄인을 만들고 있다’고 하고, 반대세력에서는 ‘조국은 모든 악의 총아’라고 몰아붙인다. 민정수석과 법무장관을 한 교수 출신 정치인의 타락에 대하여 양측이 너무 심한 과대평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어서 범여권 쪽에서는 소위 ‘4+1’이 원내 다수이기 때문에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있다고 밀어붙인다. 원내교섭단체에 관한 국회규정과 그 간의 협상관행을 모두 무시한 채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그러고도 당당하다. 헌법이고 법률이고 관행이고 없는 것 같다. 이에 대하여 야당은 무조건 반대로 일관한다. 조금의 협상여지도 허락되지 않는다. 이러한 ‘강대강’ 대치의 근저에는 ‘나만 옳다’는 독선과 아집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대중은 아무런 판단력도 없는 좀비처럼 정치권에서 흔들어대는 깃발에 따라 나부낄 뿐이다. 한 번 본 적도 없는 조국 교수의 부인에게 ‘사랑한다’고 하고, 죄의 유무를 냉정하게 따져야 할 국면에서 무조건 ‘조국 수호’를 외치는 모습이 과연 정상일까? 또한 주말마다 광화문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저 수많은 시위인파는 또한 그럴까?

이제 100일 정도 지나면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다. 지금처럼 대중이 포퓰리즘과 프로파간다에 휘둘리면, 한국의 정치는 미래가 없다. 국민들은 국가와 국민의 생존문제, 경제문제, 일자리와 사회 안전망 문제 등 여러 정책분야에서 어떤 정파가 더 생산적이고 국민들 위하는 정치를 하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인간은 무조건 선하지도 무조건 악하지도 않다. 국민들이 깨어있지 않으면 정치인들에 의하여 국가가, 헌법이, 정치가, 국정이 무너진다. 국민들의 주인된 권리를 단단히 행사해야만 국가가 망하지 않는다.

김주홍 울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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