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미옥 다운고등학교 교사

“내년 3월에는 어느 곳에서 지내게 돼?” “저, 별로 좋은 곳이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이야?” “좋은 학교가 아니라서요.”

“원하던 곳이 아니었어?” “원하던 곳이긴 한데. 서울에 좋은 학교가 아니라서요.”

“…….”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가슴이 답답해 숨을 골랐다. 12월 어느 날, 한 아이와 나눈 이야기 일부이다.

이즈음 교실은 반마다 풍경이 조금씩 다르다. 학교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이다. 교실에 돗자리를 깔고 여럿이 누워있거나. 모여앉아 수다를 떨고 있다. 몇은 폰게임 중이다. 가장 느리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능 한두 주 전부터는 오롯이 자신의 시간 계획대로 공부하고 싶은 아이들이 생긴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알아서 쓰도록 그냥 주는 것이 좋다. 혹시 아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신간들로 채운 ‘책 수레’를 끌고 교실에 간다. 시간을 풀어놓는다. 어떤 아이는 문제 풀이에 매달리고, 다른 아이는 여러 딴짓이다. 소설책을 보고 있다. 면허 시험 문제를 풀고 있다.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다. 몇 자리는 ‘미인정 조퇴(예체능 관련 분야로 진학하는 아이들은 오전에 조퇴한 뒤 학원에서 실기시험 준비로 하루를 보낼 것이다)’로 비어있다. ‘재미있는’ 책들로 가득한 책 수레에 기웃거리는 아이는 한 둘이다.

삼월 사월은 치열하였다. 상담으로, 자기소개서 쓰기로 여름 방학을 무덥게 보냈다. 그 고비를 넘긴 아이들은 어느 학교 어느 학과를 갈 것인지를 두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성적은 노력한 만큼 올라가지는 않았고, 겨우 한 제자리걸음이 그간 기울인 노력에 대한 보답인 듯하다. 꿈꾸었던 세계와는 한참 멀어진 자신이 보인다. 가고 싶은 곳과 갈 수 있는 곳 사이 거리가 또렷하다. 몸은 하나인데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다. ‘내 실력이 이 정도였구나’ ‘열심히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잠도 점점 얕아진다. 잘할 수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어른이 되면 먹고사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 보인다.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 모습이 조금 보인다. ‘내가 가는 대학이 내가 받을 사회적 대접이겠다’하는 생각도 든다.

울산 근처에 있는 대학의 간호학과를 가게 된 이 아이는 집안 형편을 생각해도 자신에게 가장 최선인 대학교를 선택했음에도 가슴 펴고 환하게 말 못 한다. ‘좋은 학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벌써 저리 주눅이 들어버린 것이겠지.

방학을 앞둔 며칠 전 3학년 부장 선생님이 올해 대학 입학 결과자료를 보내주었다. 천천히 이름과 학교를 확인했다. 서울의 이름난 학교에 붙은 아이들은 다른 곳에도 여럿 붙었다. 이제 마음 편히 고르기만 하면 되겠지, 사회적으로 좀 더 유리한 곳으로.

이맘때 아이들이 지었던 표정의 밝기와 대학 합격 결과는 정확히 비례한다. 환하던 아이들 얼굴에는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오늘을 사는 이 아이는 내일에 빛날 볕에서 제대로 한껏 피어나기도 전에 미리 주눅이 들었다. 이 아이가 장차 어떻게 자랄지 우리 어른들은 정말 미리 알 수 있는가? 신미옥 다운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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