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민들 앞에 산적한 난제들
영화‘천문’처럼 하늘에 물어보거나
과거의 책문처럼 신묘한 해답 절실

▲ 우항수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공학박사

어릴적 강원도 산골의 겨울 밤하늘은 검푸른 벨벳 융단에 빛을 받은 큐빅들이 빼곡이 박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투명한 녹말풀을 붓으로 덧칠한 듯한 은하수는 마치 신비로운 캔버스 같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세종과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보았다.

빛 공해가 없던 옛날에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낮에는 해와 함께, 밤에는 달·별과 함께 생활했다. 그래서 남극이나 북극, 적도지역보다 비교적 따뜻한 위도에서는 점성술이 발달하였다. 우주의 신비나 하늘의 비밀은 해가 없는 밤에만 열리는 비밀의 커튼이었다. 누구나 머리를 들어 자기만의 별을 새겨 놓기도 하였다.

우주의 신비와 밤하늘의 비밀이 옛날에는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 되었지만 이제는 특별히 관심있고 지적인 사람들이나 일부 동호회원들에게만 열려 있는 듯 하다. 빛 공해는 점점 많아지고 인간들의 삶은 갈수록 바빠지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 기준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고 답답할 뿐이다.

그러나 천재는 숨은 그 끼를 숨길 수 없고, 위대한 왕은 인재를 발탁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는 문무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배어 있어서 농기구 제작이나 과학기술 발명품까지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깨어있는 관료들은 항상 가슴앓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자들은 나라와 백성을 위한 충정을 호소하며 하늘에다 답을 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손재주 많고 비상한 감각을 지닌 이공계통 사람들에게 신분 차이를 적게 두었더라면 부국강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때 고급 공무원 선발시험인 대과의 마지막 토론형 논술 주제로 주는 것이 ‘책문(策問)’이다. 왕이 국가의 비전이나 국정 현안에 대한 문제를 내면 그에 대한 답을 논술형으로 적어야 하는데 그것이 ‘대책(對策)’이다.

세종과 장영실은 서로간의 질의응답으로 수 많은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주위 환경이나 사상 문제 때문에 그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프레임에 걸리는 한계를 자주 발견했다. 이같은 한계에 봉착했을 때 그들은 하늘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늘에 물어보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였다.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자신만의 별이라고 부르지만, 하늘의 별은 그 누구만의 별이 아니라 그 별을 보는 사람 모두의 별이 된다. 그리고 밤하늘에 별은 수없이 있지만 누구나 별을 보지는 않는다. 또한 별은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그 별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한을 주어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인물에 대해 시대를 잘못 만났거니, 혹은 너무 앞서 간다고 말한다. 천동설에 의문이 들었던 코페르니쿠스가 그랬다. 그러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은 종교뿐 아니라 인간의 사고 체계를 근본적으로 전환시켰고 과학과 사상, 철학에까지 커다란 변혁을 가져왔다.

영화제목을 보면 천문학과 관련된 과학·역사 영화이기에 天文(천문)이라 할 수도 있지만 한글로 해석하면 天問(천문)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또 한글 부제인 ‘하늘에 묻는다’라고 하면 ‘하늘에게 물어본다’는 뜻과 ‘하늘에 자신의 꿈을 묻어둔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우주에는 70% 정도가 수소라고 한다.

에너지와 물질의 근원이 수소에서 출발하였으며 우주의 기원을 찾을 때는 수소가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핵 융합되어 다른 원소로 만들어지는지에 따라 행성과 우주의 나이와 소멸을 예측할 수 있다. 아직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이 주위에 산적해 있다. 정부와 국민들은 이러한 난제들을 책문(策問)하고 있지만 대책(對策)은 난감하고, 다양한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시린 겨울날 별 보기 좋은 신불재나 가지산에서 천문(天文)하고 싶다. 우항수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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