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수 울산판화협회 회원

신궁(神宮) 김진호! 한국양궁은 이 선수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올림픽에서 양궁은 금메달을 따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은 말아 달라” “많은 선수들이 한국 양궁의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금메달만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부담감과 싸우면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경기정신에 박수를 보내 달라.” 그리고 후배 선수들에게 이렇게 주문한다. “날아 간 화살에 연(連)을 두지 마라” 부담을 던지라는 말이다. “이미 내 손을 떠난 화살이다”라고 해석하고도 싶다. 나는 이 말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도 해 본다.

<가시나>라는 단어는 계집아이의 경상도 방언(方言)이다. 아버지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인 여자를 칭할 때 쓰는 정담(情談)있는 단어다. 그러나 잘못 쓰면 성희롱(性戱弄)죄로 몰린다. 조심해서 써야 할 단어다. 함께 근무했던 역사 선생님이 시내 중심학교로 전보받아 갔다. 그 분은 평소 나의 수업방법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활용한 수업방법은 현장학습과 협동학습을 융합한 방법이다. <박물관을 활용한 현장견학보고서 제출>이 과제였다. 4명이 1 개조로 하여 학습결과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같은 조의 내용이 같아도 되는데 마지막 두세 줄은 자신만의 소리를 적어서 제출하라고 일렀다. 정답은 없었다. 경주역 앞 성동시장에 가서 떡뽁기 사 먹은 추억의 내용도 좋다고 했다.

당시 학생들은 경주박물관에 친구들과 같이 놀러가는 것이 숙제였으니,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었다. 큰 문제는 안전사고의 위험이었다. 또한 미술교사가 박물관 활용수업을 한다는 것에 역사교과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이런 수업방법을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나를 초청한 장소가 실비주점이었다. 그곳에는 당시 일과를 마쳤던 교사들의 토론장과 야간 학습을 위해 저녁식사를 위한 식당이기도 했다.

나는 좌중에 인사했다. 울산공고에 근무하는 미술교사 박현수입니다. 그러나 좌중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우리가 지금 실업계 기타과목 교사와 술 마시게 되었나? 나는 그의 테이블로 옮겨 앉았다. 무슨 교과를 가르치오? 수학이오. 어떻게 가르쳤소? 김태희도 내가 가르쳤고, ○○판사도 내가 가르쳤소. 내가 서울대학을 두 명이나 보냈소. 내가 다시 되물었다. “수학이 무엇이요? 수학은 논리요.” 그 제자 지금 연락되나요? 그리고 선생을 찾아오나요? 바빠서 연락도 못하오.

선생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당신은 제자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점수를 팔아먹었소. 거래는 끝났소. 제자가 연락줄 일도 없소. 어찌 날아간 화살에 아직 연(連)을 두고 있어요. 나 보고 기타과목이라고? 그 교사는 학교 선생을 욕되게 하지마소. 나에게 되묻는다. 선생은 무엇을 가르쳐요? 미술이오. 그 많은 미술시간 보냈는데 졸업할때 왜 자기 얼굴도 하나 못 그리는가? 내가 이렇게 답했다. 미술은 사물을 표현하는 과정은 있지만 그것이 미술교과의 전 지도목표는 아니다. 사물의 형태를 옮기는 것은 카메라도 할 수 있다. 학생 자신이 사물을 어떤 관점에서보고 어떤 방식으로 표현 하는가에 따른 원리를 알고자 가르칠 뿐이다.

그러면 미술이 무엇이오? <미술이라고 말하지 말고 예술을 물으시오. 미술, 음악, 무용, 문학, 연극, 모두 예술이오.> 그리고 <예술은 삶이요> <밥 먹고 살기 어려운데 무슨 예술이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삶에서 배고픔을 해결했으면 풍부한 삶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감동 주는 삶. 감동할 줄 아는 삶. 이것이 예술교육의 목적이다. 밥 만 먹고 살래? 수학교사가 이 말을 하면 명언이다. <수학은 논리요, 예술은 감동이 있는 삶이다.>딸은 둔 한 아버지가 이렇게 말한다. “몸이 아파있는데 딸이 전화질이다.” <아버지 몸은 어떻세요?> <응 그래 괜찮다.> <제가 내려갈까요?> <올 필요 없다.> 전화를 끊고 하는 말 “가시나가 보고 싶은데 오지도 않으면서 전화질만 한다. 전화질도 안하는 가시나도 많제.” 날아 간 화살이다. 가시나 경자가 왔다(更子年). 경인(更寅)의 동생이다. 성질이 더럽단다. 모두 조심하자. 박현수 울산판화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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