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갈등 딛고 모자이크사회 된 미국
한국도 다문화사회로 바뀌어가는만큼
약자와 타자에 대한 진정한 포용력을

▲ 한규만 울산대 교수·영문학

요즘 TV 프로그램 ‘대한 외국인’은 참 유익하고 재미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출연해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관한 퀴즈 대결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어떤 경우에는 토종 한국인보다 낫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205만5000명이다. 5100만 국민 중 4%가 외국인인 셈이다. 20년 뒤인 2040년에는 다문화가정 비율이 20%를 넘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정부는 미국이나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다문화사회를 위한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단일민족을 강조해온 우리 국민은 정작 이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듯하다.

우리 보다 앞서 인종 차별과 평등 논란을 경험하고 극복한 미국의 1월을 살펴보면 우리가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1월에 인종차별 철폐와 다문화사회로 가는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번째,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 선언’을 한 때가 1863년 1월1일이다. 공식적으로 ‘노예 해방 선언’이 있었으나 현실에서는 미국 백인들 상당수가 받아들이지 못했다. 연방정부차원에서는 흑백차별이 폐지됐지만 남부의 주와 개인 차원에서는 흑인투표 방해공작이 자행됐고, 버스승차시 백인과 흑인의 전용 칸을 따로 배치하기도 했다. 백인우월주의를 ‘가장 노골적이고 극단적으로 표현한 집단은 백인우월주의 테러집단이었던 KKK일 것이다(최재인).’

두번째, 1월 셋째 월요일은 민권운동을 하다 암살당한 킹목사의 생일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흑인차별에 분노한 흑인들의 버스승차 거부운동이 1956년 앨러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일어난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를 중심으로 비폭력 운동이 불같이 타올랐다. 백인들 편에 섰던 게일 시장은 강경진압책을 선언했고 흑인들을 억압하는 공식적인 정책이 시행됐다. 이때 승차거부에 동참한 많은 흑인들은 일터에서 쫓겨났다. 버스승차에서 흑백분리를 지속하려는 시당국에 대하여 연방 지방법원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인간 양심과 자유의 최후 보루는 법원’임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이후 미국은 인종차별 철폐와 ‘혈연적 민족주의’를 넘어서면서, 다문화주의와 포용정신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미국은 ‘멜팅팟(용광로)’을 거쳐서 ‘샐러드볼’ 또는 ‘모자이크 사회’로 변모했다.

이같은 역사적 진실을 망각하고, 요즘 한국에서는 ‘단일민족’ 국가임을 구실삼아 일부 못된 기득권자들이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정의 어린이를 괴롭히고 있다. 외국에서 온 산업연수생들과 3D업종의 근로자들은 우리가 필요하여 모셔온 것이다. 이들의 희생과 땀이 없다면 한국의 중소업체와 영농업체는 버티기 힘들 것이다. 이들 덕분에 수출이 유지되고 농산물을 값싸게 사먹고 있다. 피부색이 다르고 힘없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구박하고 박해한다면 우리 역시 미국의 악명높은 KKK와 다를 바가 무언가.

사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미 많은 외국인을 포용해왔다. ‘신라를 찾아온 석탈해’는 일본 북동쪽 천리 떨어진 곳 다파나국 출신으로 신라의 명문가를 이루었다. ‘베트남 왕자’였던 이용상은 고려로 귀화한 후 몽골군과 싸워 이겨서 우리 백성을 보호해 주었다. ‘이성계의 의형제’ 이지란은 여진족 출신으로 조선 개국공신이 됐다. 최근 ‘히딩크 감독’은 우리나라 축구 수준을 월드컵 축구 수준으로 높여 주었다. 사사를 받은 덕분에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의 영웅이 되었고 베트남인들이 한국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게 된 것이다.

새해다. 마음 문을 활짝 열고 겸허하게 다양한 문화를 품어야 한다. 샐러드 그릇속 다양한 음식처럼, 형형색색 모자이크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한국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 시대다. 약자와 타자에게 관대한 성품을 키울 때 진정 선진 포용국가가 가능하다. 한규만 울산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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