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허명에 고립된 생활보다
친근한 의사로 재능·기술 쏟고파

▲ 조현오 울산시티병원장

인생은 충분할 만큼 길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생각만큼 짧은 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주어진 생명을 일찍 포기하고, 또 다른 이는 고달픈 삶이지만 아쉬움이 점철되어 끝자락을 붙잡고 울부짖으며 매달린다.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꾸민다면 결코 인생은 길지도 짧지도 않다고 생각된다. 70여년의 삶을 되돌아보니 인생은 결코 만만하거나 무의미하지는 않다. 많은 세월을 근시안적 표적을 향하여 서로 경쟁하며 허망과 공상에 파묻혀 일차원적으로 살다보니 구름위에 존재하는 찬란한 태양과 땅속에 자리잡는 금맥은 물론, 바로 이웃에 있는 진국도 몰라보고 인생은 덧없고 허무하다고 한탄한다.

영국의 토마스 모어는 혈기왕성한 젊을 때는 세상을 주름잡을 것 같은 야망을 가졌으나 성숙하면서 점차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목표를 축소지향하면서 국가로, 지역으로 좁혀가다가 결국에는 가족도 마음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며 처음부터 나 자신을 잘 다스렸으면 가족도, 국가도 포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죽을 때가 돼서야 깨달았다고 묘비명에 기록했다.

한 사람의 의사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많은 어려움을 참고 견뎌야 하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 때문에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도움과 하늘의 은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자칫 자만심이 넘쳐 남에게 대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교수, 박사, 전문의나 원장 등 권위와 허명에 매달려 주변 이웃과는 달라야 한다는 편협된 사고의 터널에서 괴리된 생활에 고립되어 살게 되는 것이다. 화려한 무대와 아수라장같은 정치판에 도취되어 환호에 익숙한 인기연예인이나 정치가들도 막상 관객이 떠난 무대 뒤에서는 고독을 이기지 못하고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근래들어 환자와 내방객들에게서 ‘동네 오빠’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고 익숙치 않았으나 생각해보니 그렇게 편안하고 포근할 수가 없어 차츰 그 명칭에 호응하게 됐다. 스스로 ‘동네 오빠’와 같은 마음을 갖고 환자와 내방객들을 맞으니 오히려 창밖에 사는 그들이 이방인이었던 나를 포용해 주는 것임을 깨닫게 됐다. 구수하고 서민적인 냄새가 나면서 모든 헛됨과 가면이 스스로 녹아내린다. 가까이 다가오고 싶어하는 환자도 보이고 세상이 밝아 보인다. 환자와 일체가 되니 병을 고치는 단순 기술자이기 보다는 병을 가진 인간을 어루 만져주는 인술로 무장하게 된다. 인간을 완벽하게 고치기 보다는 자연섭리에 따라 자연치유력을 활용하는 넉넉한 의사로 나아가고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무거운 외투를 벗겨주는 쪽은 강한 바람이 아니다. 따뜻한 햇살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많은 의과대학 동기들은 찬란한 의료현장에서 이름을 날렸건만 이제는 자의든, 타의든 뒤안길로 물러났다. 하지만 나는 ‘동네 오빠’를 찾는 많은 분들에 휩싸여 분주한 나날을 지낸다. 의사 생활 중 최고의 황금기인 것 같다. 진료는 물론 수술도 내 생애 가장 많이 하고 있다. ‘하루하루 충실히 살다보니 늙을 시간이 없다’는 농담이 절로 나온다. 치매나 건강에 크게 장애를 주는 병도 피해가는 것 같다. 나이 들어 건강하고 할 일이 있으며 하루를 나눌 친구나 이웃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이들의 도움으로 나의 재능과 기술을 다 쏟고 가고 싶다.

“하느님! 저는 하느님이 주신 은총에 보답하여 나의 생명과 재능을 나누겠습니다. 저에게는 오래 살기보다는 짧더라도 일 할 수 있는 동안의 건강만 주십시오. 그러면 인생은 결코 짧지 않을뿐 아니라 저에게는 충분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살아서는 충만된 삶이 되고 마지막 날 편안하고 인생이 즐거웠다는 마음을 가지고 귀천하겠습니다.”

새해 기도를 올린다. 조현오 울산시티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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