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규상 천상고등학교 교사
다시 한 해의 시작이다. 해가 바뀐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이 시기가 ‘나’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는 계기는 된다.

해가 바뀌고 첫 출근날에 일 년 묵은 책상을 정리했다. 책상과 책꽂이를 뒤져 보니 별의별 것이 다 나온다. 수업에 활용하려고 만들었다가 묵혀 둔 자료 뭉치도 있고, 수행평가 결과물도 수북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살피지 못한 자기소개서도 있고, 미처 답을 주지 못한 아이들의 편지와 쪽지도 있다. 쏟아져 나온 것이 아이들과 관계된 것만은 아니다. 동료교사들과 돌려 보겠다고 만든 자료와 유인물, 확인하고 정리해야겠다 싶어 출력해둔 교육청 공문이 한 편에 쌓여 있다. 이렇게 저렇게 나누다 보니 지난 일 년 동안의 학교생활이 스쳐 지난다. 그때그때 매듭지어야 했을 것을 미루며 벼르다가 그만 까맣게 잊고 지나쳤다. 이제야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긴다.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돌아보면 무언가 해보려고 참 애썼던 일 년이었다.

지난해에는 고3 수업을 맡았다. 신설학교의 첫 고3이 주는 부담감과는 별개로 고3 2학기 아이들의 침묵에 힘들었다. 긴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앉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교실을 이렇게 만든 교육당국을 막연한 언어로 비판했다. 책상 위에 덩그렇게 놓인, 제발 이름이라도 써서 내달라며 사정했던 2학기 수행평가 결과물을 보면 그래서 더 속상하다.

해마다 2월이면 학교에서 농담처럼 들리는 말, “한 시간 뻔뻔하면 일 년이 편하다.” 이 말이 불편해서 업무분장 TF팀을 구성하고, 우리 학교만의 근사한 업무분장표와 인사 규칙을 만들어 보려 했다. 업무분장과 관련한 잘못된 문화를 바꿔보자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그 바탕이었다.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논쟁하며 최선의 방책을 함께 찾아가는 동료교사들은 그 누구보다 귀한 존재일 텐데, 간곡한 청을 담은 안내문을 바라보는 마음이 고되다.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이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연설한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떠올려 본다. 타인의 삶에 공감하는 상상력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우리 아이들의 교실이 아니기를, 그 상상력 결핍의 골이 더 깊어지는 우리 교사들의 교무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방학이 끝나면 다시 만날 아이들이고 동료교사들인데 불편한 마음을 가슴에 품은 채 새 학년을 맞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털고 정리를 해야 길이 보인다. 한 해만 하고 그만둘 일이 아니니 나름의 정리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가 반갑다.

안녕, 경자 씨.

손규상 천상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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