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중요하듯
정치도 여론과 교감하는 감수성 필수
물갈이론에 앞서 스스로 진퇴 결정을

▲ 김두수 정치부 서울본부장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지난해 10월초. 이혼 등 가사심판을 주로 하는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서울가정법원 큰길 건너편 어느 커피숍 구석자리. 40대 남녀가 고함을 치며 난리를 피웠다. 이윽고 또 다른 남성이 다가와 감정을 추스르는 중재를 폈으나 별무소용이었다. 이들 남녀는 법적으로 혼인한 부부사이로 “애정이 끝난 상황에서 더 이상 결혼생활은 무의미하다”는 측과 “그래도 한번의 잘못은 반성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측이 정면충돌 중이었다. 성평등 젠더 및 폭력예방과 관련된 ‘재능기부 저널리스트’로서 필자는 강의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이상한 그림’은 수없이 접하게 된다.

남녀 사이 애정(사랑)의 조건은 개별 성장 과정과 생각, 환경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합리적 함의를 담은 사랑의 조건은 열정, 헌신, 친밀, 신뢰 등 네 가지로 유지된다. 서로간 정서가 깨지는 순간부터 법적 장치를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이 성적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의 우선권리 등 바야흐로 현대적 사랑의 현주소다.

국민의 지지와 여론을 먹고사는 정치권력도 행복추구 권리자인 유권자와의 관계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서 다시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을 수도 있지만 ‘조국 사태’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과거 전통적인 가부장적 시대의 사랑의 조건과, 권위주의 시대의 정치권력의 흐름은 유사성을 가졌다. 애정이 종지부를 찍은 상황에서 이혼하고 싶어도 부모와 가족의 강력한 반대정서와 주변의 눈치에 짓눌려 포기하고, 장관 후보자의 큰 흠집에도 서슬퍼런 권력의 힘에 의해 일정 부분 인위적으로 유지됐던 시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구시대가 아니다. 남녀사이 자유로운 사랑과 의사결정, 정치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자유로운 비판과 선택이 결정적 힘을 발휘하는 선진 시민사회다.

그럼에도 끝없는 구애와 함께 피로지수를 높일 땐 외려 국민들을 상대로 일방적, 정서적 구애자로 괴롭히는 ‘정치 스토커’로 변질될 수도 있다. 4월총선이 ‘D-82’으로 치닫고 있는 작금에서 울산총선 가도에선 이런 ‘정치 스토커’는 과연 없을까?

시민들의 피로감이 극도로 고조된 상황인 작금에서도 “나는 반드시 한번 더 해야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한번 더 하라고 난린데, 언론이 물갈이를 부추긴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연애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이 시대적 흐름의 상황에서 정치권에서의 자기결정권은 가장 기초적인 것일 뿐이다. 대통령은 물론 국회의원, 시장 군수 구청장 등 이른바 선출직 정치권력자의 화학적 애정관계의 상대는 국민이며 유권자다.

특히 작금의 울산지역 6개 지역구에서 ‘한번 더’를 외치는 현역의원과 유권자들의 애정관계는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물론 법적장치의 과학적 검증은 선거당일 유권자들의 표심결과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이미 각종 여론조사에서의 교체지수와 함께 시민 체감도에도 확연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체감에서 교체지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정치인은 평소 책임과 의무를 방기한채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며 자신의 영달과 거짓으로 ‘바람 피운’ 결과일 뿐. 시쳇말로 연애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중요하다면, 정치권에선 시대정신을 감지하고 선제적 처신의 ‘정치 감수성’이 필수다.

한국의 정치사에서 큰 획을 그은 YS(김영삼), DJ(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국민들과의 애정과 사랑을 즐기면서도 ‘물러날 땐 과감하게, 돌아올 땐 확실하게’의 동물적 감각과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수의 텃밭 울산·부산·경남 등 동남권에서 물갈이 바람이 거세다. 유권자들이 사실상 이미 애정에 종지부를 찍은 상황에서 그래도 먼저 알아서 던질줄 아는 정치인과, 그렇지 못한 정치인의 종착역이 더욱 궁금한 시점이다. 김두수 정치부 서울본부장 dusoo@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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