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로 ‘롯데삼동복지재단’ 세워
지역 학생들 과학체험 기회 제공
예체능 장학생에 도서관 지원도

▲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생전에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의 롯데별장에서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 / 롯데그룹 제공

지난 19일 향년 99세의 일기로 별세한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맨손으로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해 롯데를 국내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고인은 불모지에 가깝던 한국 유통 산업을 진두지휘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 신 명예회장은 1922년 10월4일(음력) 경남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의 농가에서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실제 출생은 1921년이다. 언양보통학교(초등학교)와 울산농업보습학교(울산농고)를 졸업한 뒤 돼지 사육을 하다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 1942년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 갔다.

▲ 산책을 하고 있는 장면 / 롯데그룹 제공

고 신 명예회장은 우유배달을 하며 와세다고등공업학교 화학과(현 와세다대학 이학부)를 졸업하고, 1946년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를 짓고 비누 크림 등을 만들어 팔았다. 1948년 6월 껌을 주력 제품으로 하는 (주)롯데를 설립하며 롯데 신화의 막을 올렸다.

고인은 롯데를 일본 제1의 종합제과메이커로 성장시켰지만 줄곧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했다. 일본의 귀화 유혹을 뿌리쳤다.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 했던 그는 1966년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뤄지자 한국으로 돌아왔고,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1973년 서울 소공동에 롯데호텔을 준공했고, 1974년과 1977년 칠성한미음료와 삼강산업을 각각 인수해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현 롯데푸드)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1979년엔 롯데백화점을 열고 유통업에 진출했다.

▲ 22일 영결식을 마친 고 신격호 회장의 장례행렬이 장지로 떠나기 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주변을 돌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롯데그룹은 1980년대 고속 성장기를 맞아 연이은 인수·합병을 거쳐 국내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한국에서 사업을 확장시켜 나가던 고인은 고향인 삼남면 둔기마을이 1970년 울산공단의 용수공급을 위한 대암댐 건설과 함께 수몰되자 1971년부터 마을 이름을 딴 ‘둔기회’를 만들고 해마다 잔치를 열었다.

고향 사람들을 불러 옛정을 나누는 이 잔치는 43년간 지속됐다. 첫해 수십 명 수준이었던 둔기회 회원은 자손이 늘어나면서 1000여명으로 늘었다.

고향인 울산 발전과 복지 사업에 기여하고 싶다는 뜻에 따라 사재 570억원을 출연, 2009년 12월 ‘롯데삼동복지재단’을 출범시켰다. 롯데삼동복지재단은 울산을 중심으로 농어촌지역의 문화 수준 향상, 공평한 교육 기회 제공, 사회복지 관련 시설 확충, 주민 문화복지 등을 기본사업으로 펼쳤다. 롯데삼동복지재단은 현재 울산 최대 규모의 사회복지법인으로서 지역 아동의 교육·문화·복지 사업은 물론 사회복지 시설 및 기관, 단체 지원 등 다양한 복지 사업을 펼치고 있다.

또 지역 학생들에게 체험 학습을 부여해 과학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에서 옥동연구단지 내에 울산과학관을 지어 울산시교육청에 기증했다. 고 신 명예회장이 사재 240억원을 출연한 울산과학관은 지하 2층, 지상 6층, 야외전시장 등 1만7000㎡ 규모의 과학체험교육 시설이다. 2011년 3월 개관식을 갖고 일반에 공개됐고, 이후 매년 연간 50만여명이 이용하고 있다.

롯데삼동복지재단은 매년 학생 50명을 선발해 울산예체능 롯데장학급을 지원하고 있고, 학교도서관 환경 개선을 위한 지원사업으로 2015년부터 3년간 136개 학교의 학교도서관 환경 개선과 신간도서 구입을 위해 7억여원을 지원했다. 이춘봉기자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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