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경자년(庚子年) 설 하루 빠끔하고는 계속 비가 왔다. 연휴기간 내내 우중충하고 어둡고 추운 날이 이어졌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언젠가는 쥐구멍에 반드시 볕이 든다는 것이다.

숟가락질 설거지 냉장고 문 여닫기/ 얼마나 하고 싶었던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깁스를 하는 바람에/ 왼손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백수 생활을 청산하듯 깁스를 풀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물 한잔을 따랐고 봄바람도 한 그릇 받았다/ 쥐구멍에 든 볕이 알밤처럼 보였다 ‘쥐구멍에 든 볕’ 전문(이주희)

올해는 흰 쥐의 해이다. 쥐는 3600만년 전에 나타난 포유동물로, 그 종류가 1800여 종에 이른다. 임신 기간은 20~30일로, 한번에 6~8마리의 새끼를 낳으며 수명은 2년 정도다. 쥐를 ‘서(鼠)’로 쓰지 않고 자식 ‘자(子)’로 표기하는 이유도 다산과 관련이 있다. 쥐가 번식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오죽하면 60~7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쥐 잡기 운동을 벌였을까. 쥐를 박멸하기 위해 쥐약을 곳곳에 놓다보니 엉뚱하게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나 쥐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면도 많았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는 미운정 고운정 다 든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물이었다. 우선 쥐는 지혜의 상징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재빠르고 명석하고 민첩한 동물 가운데 으뜸이 바로 쥐다. 우화를 보면 그 지혜로움을 이해할 수 있다.

옛날 옥황상제가 12종의 동물을 모아 달리기 시합을 시켰다. 시간 개념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쥐는 부지런히 뛴 소의 머리에 앉아 있다가 뛰어내려 손쉽게 1등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도착한 동물은 소(축), 호랑이(인), 토끼(묘), 용(진), 뱀(사), 말(오), 양(미), 원숭이(신), 닭(유), 개(술), 돼지(해) 였다. 시합에서 1등을 한 쥐는 하루 중의 맨 처음 시간인 ‘자시(子時)’라는 영예를 안았다. 자시는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를 말하며, 밤 12시는 ‘자정(子正)’, 밤 11시는 ‘자초(子初), 새벽 1시는 ‘자말(子末)’이라고 한다.

‘시골 쥐와 도시 쥐’는 또 어떤가. 시골 쥐는 가난하지만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생을 즐겼다. 그러나 도시 쥐는 화려하고 풍요롭지만 늘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까.

경자년 벽두에 겨울비가 내린다. 설 연휴가 지나면 벌써 신춘(新春)이다. 새해 첫 자시(子時)에 흰 쥐의 지혜와 부지런함을 빌어본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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