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수진 울산여상 교사

나는 한문 교사다. 나름 한문 교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한문이라는 과목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 보면 이 자부심은 지난 시간 나의 최선에 대한 훈장일 것이다.

3월 첫 한문시간마다 학생들에게 말한다. “여러분! 한자 외우지 마세요!”라고.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나를 본다. 뭐지? 저 선생님은? 이런 표정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그냥 한자를 만납시다!” 선생님 친구는 우연히 두 번이나 맞선 본 사람과 결혼까지 했다는 아주 강력한(?) 예시를 들며, 사람도 2번 만나면 결혼까지 하는데 한자는 오죽하겠냐고 너스레를 떤다.

한문 과목은 학생들이 싫어하는 과목 중 하나인 것 같다. 학창 시절 한문시간이 좋았다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한문 공책에 한자 10번씩 쓰기같은 끔찍한 숙제, 한자 외우기 시험 쳐서 맞은 기억 그리고 무서운 선생님과 외우기도 어려운 공포의 글자가 한문에 대한 기억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우연히 한문학과에 입학한 운명의 장난을 인정하고 한문 선생님이 된 지금 바로 태세 전환! 한문의 주요 문자인 한자, 한자어는 우리 일상 언어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보통은 우리말에서 한자어의 비중이 60~70% 정도라고 한다. 이는 언어의 변화에 따른 외래어, 신조어, 외국어가 우리말에 유입되어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아진 탓이다.

우리말을 더 잘 하기 위해서 한자와 한자어 학습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일상 언어생활에서 노출이 안되는 한자를 억지로 외우는 것은 ‘무의미철자 학습’에 가깝다. 나도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 때만 되면 열심히 외운 한자가 시험이 끝나자 기억 저편으로 넘어간 숱한 역사가 있다.

몇 년 전 5살이던 아들이 엄마의 직업을 묻기에 한문선생님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이어 “한문이 뭐야?” 라기에 “중국 글자야”라고 했더니, “중국 글자를 엄마가 왜 가르쳐?”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말의 뒤에는 한자가 숨어있어. 엄마는 누나들이 우리말을 더 잘 이해하라고 우리말 뒤에 숨어있는 한자를 가르켜.”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이후 아들은 “냉장고 뒤에는 어떤 한자가 숨어 있어?”라고 물었다. 이어 “냉장고(冷藏庫)에는 차가울(냉)과 저장할(장) 창고(고)라는 한자가 숨어 있어서 차갑게 음식을 저장하는 창고란다”라고 대답했다. 아들과의 대화는 내게 힌트가 되었다. ‘한자 만나기’라는 수업을 구상하게 해준 것이다.

이후 수업에서 우리말에서 어떤 특정 단어를 들으면 그 단어가 어떤 한자로 되어 있을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선풍기(扇風機)’ 뒤에는 어떤 한자가 숨어 있을까? 아이들은 자신들이 아는 범위의 한자들만 사용해서 착할(선), 바람(풍), 기계(기)라고 대답한다. “착한 바람이 나오는 기계라니?” “바람이 나와서 시원하게 해주니 착하잖아요” “선풍기 이전에 우리를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 부채였잖아. 그래서 부채(선)을 쓴단다” “아!”

매 수업시간마다 교사가 제시하는 한자 1개와 자신이 만나고 싶은 한자 1개를 보고서 형식으로 작성해서 제출한다. 이렇게 하나씩 만난 한자는 어느새 우리말의 비밀을 풀어나갈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양수진 울산여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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