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디어도시 LA
문화콘텐츠·스타트업 도시이기도 해
LA의 다양한 모습, 울산의 타산지석

▲ 성인수 울산도시공사 사장·울산대학교 명예교수

영화 ‘기생충’의 성공은 새로운 영화를 향한 젊은이들의 끝없는 노력 덕분이다. 암울했던 1970년대 유신독재시절 하길종은 영화로 항거했다. 가혹한 검열, 표현제한으로 한국영화계는 불황기, 질적 하락기였다. 영화산업은 낙후됐고 소수 영화자본들이 상업영화만 만들자 젊은 영화감독들은 좌절했다. UCLA 우수 졸업생 하길종은 할리우드 유혹을 뿌리치고 귀국하여, ‘영상시대’와 <바보들의 행진>으로 투쟁했다.

다운타운을 되살린 LA라이브(스포츠·엔터테인먼트지구 2005~09년)와 오스카상 시상식장 돌비극장(코닥극장), 게티센터는 LA(로스앤젤레스)의 명물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유니버셜스튜디오, 디즈니랜드와 CA어드벤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자연사박물관, 식스플래그 놀이동산, 벨라스코극장, 로널드레이건 대통령도서관, 홀로코스트박물관, 시타델 아울렛몰, 최근 유명해진 엔젤스플라잇, 그리피스천문대도 있다.

컬럼버스 대륙침략(1492년)에서 운디드니 학살(1890년)까지 백인들의 상륙으로 인디언이 사라졌다. 인디언들이 백인들과 싸우며 살던 땅을 빼앗기고 살아남아 ‘인디언보호구역’에 갇히는 과정이 책 <나를 ‘운디드 니’(으깨어진 무릎)에 묻어다오>에 담겼다. 신생국가 미국은 프랑스령 뉴올리언스를 사려다가, 특사단은 나폴레옹으로부터 현 미국 3분의1 크기의 루이지애나까지 헐값에 샀으나, 인디언 원주민은 고려되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독립한 멕시코는 1847년 초,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전역에서 미국에게 패하자, 나머지도 팔았다. 미국은 콜로라도, 유타, 네바다와 캘리포니아를 손에 넣었다. 스페인 총독이 1781년 만든 ‘성모마을 천사여왕’에서 ‘천사도시’가 된 LA는 멕시코의 일부에서, 전쟁이후 미국의 일부가 되었다. LA시는 석유와 물을 서부에서 끌어들여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한인 교포사회는 자영업자 1970년 3.6%, 80년 24.8%, 90년 34.6% 비율로 성장해왔다. 1992년 흑인청년 로드니 킹을 집단폭행한 백인경관 4명에게 배심원단 무죄평결로 성난 흑인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흑인폭동으로 한인업소 2300여 곳이 불에 타거나 약탈당해 피해액이 3억~4억 달러에 달했다. 한흑(韓黑)갈등으로 된 ‘4·29 LA폭동’은 재미한인사회에 큰 상처였다. 이제 코리아타운에 올 가을 한미박물관을 착공한다.

야구스타 박찬호, 류현진을 불러들인 LA다저스. 이곳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디어 중심도시, 글로벌 문화콘텐츠 도시, 스타트업이 많은 도시다. 창업도시로 자본·인재·커뮤니티의 천국인 실리콘밸리가 1위, 2위 뉴욕, 3위가 LA다. LA스타트업 2019년 투자가 미국 스타트업 펀딩의 57%나 된다. 명문대학 UCLA, USC, 칼텍 등과 산타모니카, 베니스 해변이 유명하다. 2018년 세계도시경쟁력 2위도시다.

석유사업가로 성공한 폴 게티 1세(1892~1976)가 기증한 소장품과 기금으로 1954년 미술관 게티빌라(자택)를 설립했고 1970년 증축, 2006년 다시 오픈했다. 산타모니카 산을 사들여 1997년 게티센터를 세웠다. 게티연구소는 예술, 건축 분야 책 90만권, 정기간행물, 200만장 사진 등을 보유 중이다. 게티 1세는 납치된 손자 게티 3세 목숨 값 협상도 거절했던 구두쇠지만 재산을 게티재단 등으로 기증했다.

다운타운에 자동차 중심이 아닌 ‘사람중심 2040계획’을 만들고 있다. 문화·연예·소프트웨어 등 다문화도시 LA의 다양한 모습은, 울산시에 부족한 면모를 돌아보게 하는 타산지석이다. ‘로스 앙헬레스’는 어느 종족 누군가의 천사였을까. 성인수 울산도시공사 사장·울산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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